카미노 아홉째날, 빌바오에서 포르투갈레테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15일 (목)


어제 슈퍼마켓에서 오늘 아침에 먹을 것도 함께 사왔었다. 규모가 꽤 큰 슈퍼마켓이었지만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이 없어서 아쉬웠다. 지난번 프랑스길을 걸을 때는 조그만 가게에도 전자레인지에 바로 데워먹을 수 있는 파에야(paella) 등 간단한 음식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오늘은 포르투갈레테(Portugalete)까지 전철(Metro de Bilbao)을 타고 갈 예정이어서 엊저녁에도 최대한 늦게 자고(그래 봐야 10시면 침실의 불을 끈다) 아침에도 늑장을 부렸다. 알베르게 규정에도 아침 6시30분부터 활동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알람소리에 잠시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도 다시 침대에 누워서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아침 6시 반쯤 되니까 침실 바깥에 있는 불이 켜졌다. 급할 게 없으니 침대정리도 하지 않고, 어제 사다 둔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너무 말라서 먹기가 쉽지 않았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억지로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버렸다. 모자라는 양은 납작 복숭아 하나로 보충했다.


짐을 다 챙기고도 식당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8시쯤 알베르게를 나왔다. 포르투갈레테에 가는 전철을 타려면 빌바오 시내에 있는 아반도 역(Estación de Abando Indalecio Prieto en Bilbao)으로 가야 하는데,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어서 지도로 방향만 잡고 걸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산티아고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Bilbao)이 보인다. 너무 남쪽방향으로 내려간 거였다. 다시 북쪽방향으로 걷는데, 길이 직선도 아니고 건물들 사이에 좁게 나서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가다 보니 지도에서 언뜻 봤던 누에바 프라자(Plaza Nueva)가 보였다. 지도에서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도록 돼있었다.


그렇지만 이 길 역시 직선도로가 아니다. 그래도 구불구불한 길을 북쪽 방향으로 걷다가 다리를 건너 지나가는 주민한테 물어보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알베르게에서 출발한지 30분만에 역에 도착해서 길옆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쉬기도 하고 주변을 사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 9시쯤 되어 역 안으로 들어가 포르투갈레테로 가려고 한다니까 뒷 건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뒷 건물을 그냥 지나쳐 밖으로 나갔더니 그 유명한 빌바오 메트로 출입구가 보였다. 영국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Robert Foster)가 설계했다는 작품이다.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 다시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갔다.

빌바오 메트로.jpg

1층에 있는 직원한테 포르투갈레테로 가는 곳을 물어보니 계단을 따라 올라가라고 했다. 3층까지 올라가서 매표기 앞에 있는 직원에게 전철표를 어떻게 끊는지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런데 개찰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 뒤돌아보니 그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인다. 화려한 색상이 볼만했다.

아반도 역.jpg

전철은 20분 후에 왔다(9시18분 출발). 출근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전철 안은 빈자리가 많았다. 전철은 11개 역을 거쳐 25분만에 포르투갈레테에 도착했다. 도보로는 5~6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바로 강이 보인다. 빌바오까지 흐르는 네르비온 강이다. 그리고 저 멀리 그 유명한 비스카야 다리(Puente de Vizcaya, 다리형태 때문에 Puente Colgante[= hanging bridge]라고도 한다)도 보였다.

비스카야 다리.jpg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숙소로 가지 않고 곧바로 곤돌라를 타고 다리를 건너보리고 했다. 요금은 0.5유로인데, 기계에 동전을 넣으니 자꾸만 그냥 나왔다. 옆에 있는 기계에 넣었더니 그제서야 정상적으로 티켓이 나왔다. 이 다리는, 다리 위에 케이블로 매달린 곤돌라에 차와 사람을 싣고 강을 건너는 교통수단이다. 곤돌라에는 가운데 차를 싣고 양 옆에 사람이 탈 수 있는 구조로 돼있었다.

곤돌라.jpg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다리는 에펠탑을 설계한 에펠(Gustave Eiffel)의 제자인 알베르토 팔라시오(Alberto Palacio)가 설계해서 1893년 건설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운반교(transporter bridge, 고가[高架] 이동도르래에 매단 곤돌라에 차와 사람 등을 나르는 다리)라고 한다. 또한 이 다리는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강을 건너는 데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건너왔던 곳을 보고 있는데, 조가 왔다. 어제 서로 다른 숙소를 이용했었는데, 그도 전철을 타고 온 모양이다.


조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곤돌라를 다시 타고, 조는 나룻배를 타고 건너겠다면서 다른 부두로 갔다. 잠시 후에 다시 조를 만났는데, 그는 이곳에 머물지 않고 조금 더 걸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이곳 포르투갈레테에 묵을 예정이어서 그와는 다시 헤어지게 됐다.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Portugalete)에 배낭을 맡겨놓고 나오려고 찾아 나섰다. 처음에 만난 주민들이 알려준 곳으로 올라갔는데, ‘알베르게’라고 쓴 걸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계속 올라가면서 다른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번엔 다른 곳을 알려줬다. 다시 성당 앞에서 만난 여자는 구글지도까지 찾아가며 알려주는데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쨌든 방향을 가르쳐주길래 왔던 길을 되돌아갔더니 처음에 만난 주민이 알려준 곳이 알베르게였다. 그렇지만 문은 굳건히 잠겨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가라서 배낭을 내려놓고 돌아다니기엔 조금 걱정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배낭을 메고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조금 전에 봤던 바르로 들어가니 전망 좋은 자리가 있었다. 메뉴는 오늘도 변함없이 토르티야다. 닭고기가 들어있는 보카디요도 하나 주문했다. 맥주도 시키고.


점심식사를 마쳤지만 아직은 알베르게 오픈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바르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왠지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1시간 정도 더 앉아있다가 바르를 나와 알베르게로 다시 갔다.


오늘도 역시 첫번째 도착이다. 잠시 후에 젊은 순례자가 와서 여기가 알베르게냐고 묻더니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함께 기다렸다. 아까 맥주를 마신 탓인지 너무 졸려서 신발도 벗어놓고 배낭에 기대 잠을 잤다. 그러는 사이에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숙소는 정확하게 3시에 문을 열었다. 젊은 여자직원이 와서 한 사람씩 접수를 받고 숙소규칙을 알려주느라고 접수 받는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나는 첫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아서 상관없었지만. 오늘은 빨래거리도 단출했다. 전철을 타고 와서 땀을 흘리지 않았으니 속옷과 양말, 수건만 빨면 됐다. 게다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탈수기도 있었다.


알베르게는 체육관 일부를 나눠 쓰는 공간이라 굉장히 넓고 층고도 높았다. 입구에서 침대가 있는 곳까지도 꽤 멀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으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진기한 모습을 발견했다. 경사진 길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데바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걸 봤었는데, 여기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다만, 올라갈 수만 있었다. 내가 힘들어서 그랬는지, 내려가기에도 만만찮은 경사였는데.

에스컬레이터.jpg

저녁식사도 결국 점심을 먹었던 바르에서 해결했다. 오랜만에 많은 음식을 주문해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먹고 난 후에도 한동안 속이 거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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