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11일쩨, 온톤에서 리엔도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17일 (토)


오늘도 역시 6시에 일어나 화장실에 들렀다가 식당으로 가니 식탁에 아침식사 준비가 돼있었다. 그래 봐야 토스트와 커피, 우유가 전부지만 가게에서 사다 혼자 먹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알베르게 주인이 와서 원래 식사시간은 6시 반이라고 했다. 이런!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먹이 기다리는 가축마냥 앉아있었더니 그냥 중 거였다.


남들보다 아침식사를 일찍 끝냈으니 출발도 먼저 했다. 7시가 되기도 전이어서 아직은 날이 밝지 않았다. 그렇지만 산길이 아니면 그럭저럭 길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더구나 요즘은 조 덕분에 받아놓은 카미노 지도 앱 덕분에 노란 화살표를 찾지 않고도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구리에소(El Pontarrón de Guriezo)까지 걸을 예정이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알베르게 문을 닫은 것 같아서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Castro Urdiales)까지 8.6km만 걷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리엔도(Hazas-Liendo)까지 가려고 했다.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로 가는 길에 잠깐 길을 잃었지만 방향은 맞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더구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어서 시간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2시간 반쯤 걸려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에 도착했다.


해변길을 지나는데 여러 나라의 전기차들이 전시돼있었다. 그 중에 우리나라 기아의 빨간색 전기차(EV6)도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현지인 두 사람이 유독 그 차에만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대충 보는 듯하더니 자전거에서 내려 차 내부까지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기아전기차.jpg

조금 걷다가 현지주민에게 휴대폰 충전코드 살 곳을 물어봤더니 골목으로 들어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보니 10시에 연다는 안내문만 붙어있고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해서 인근 바르로 갔다. 막 오픈준비 하는 바르에 들어가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맥주와 핀초를 주문해서 먹었다.


10시5분전에 다시 가게(Super Mobile)로 갔더니 아직도 문이 닫혀있었다. 잠시 후에 중국계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오더니 가게 문을 열었지만, 그들이 들어오라고도 하지 않고 아직은 10시 전이어서 기다렸다가 10시 정각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도 물론 장사준비 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자기손님인 걸 알면 안으로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할 것 같은데, 가만히 있는 것도 생경했다.


충전코드를 하나 샀는데 4.9유로라고 했다. 값이 비교적 저렴하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하나는 더 사서 가게를 나왔다.


이제 리엔도까지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 뭔가 열심히 가르쳐주기는 하는데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니었다. 나중에는 버스표를 팔고 있는 부스에 가서 물어보니 그곳은 시내버스표만 판다고 하면서, 약도를 그려주면서 그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가는 길에 과일가게에 들러 길을 다시 물어보기 위해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과일도 샀다.


지도를 보면서 찾아간 버스정류장에는 리엔도가 쓰여있지 않았다. 리엔도에서 12km나 떨어진 이슬라레스(Islares)까지 가는 버스만 보인다. 이제 더 이상 물어볼 곳도 없었다. 아마도 리엔도까지 가는 버스는 없는 것 같았다. 인구가 3만5천 명이나 되는, 꽤 큰 도시라서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대중교통은 많이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우리나라(100,339km2)보다 5배나 큰 면적(505,944km2)에 우리나라보다 적은 인구가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리엔도까지 가는 방법은 딱 하나, 택시를 타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택시 타는 곳을 찾아 나섰다. 무작정 돌아다니다 보니 길바닥에 ‘TAXI’라고 쓴 곳이 있었다. 옆에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있었지만 전화는 할 수 없었다. 무작정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왔다.


리엔도까지 가는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미터기에 나오는 대로 내면 된다고 했다.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까지는 20km 정도 되기 때문에 택시로 20분이면 충분하다. 요금은 25유로를 지불했다. 만약 버스를 탄다면 5유로 미만으로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택시비가 비싸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엔도의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Saturnino Candina en Liendo)까지 가지 않고 마을입구에서 택시를 내렸기 때문에 이제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했다. 지도를 보니 조금 더 걸어가야 카미노와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이곳이 큰 마을은 아니어서 카미노를 만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런데 그곳이 마을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베르게까지는 1.3km란 이정표가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또 걸었다.

리엔도 알베르게.jpg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줄 알았던 알베르게가 안 보인다. 마침 말을 타고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산타마리아 교회(Parroquia de Santa María en Liendo) 뒤에 있다고 알려줬다. 이제 이 정도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알베르게까지 가는 동안 바르도 여럿 있었다.

말타는 주민.jpg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문은 잠겨있고 전화하라는 쪽지만 붙어있었다. 그곳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더니 한참 동안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전화를 끊고 조금 기다렸더니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주고 침대까지 안내해줬다.


아직 다른 순례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샤워부터 하고 빨래까지 한(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세탁기를 이용했다. 그것도 무료로) 후에 점심을 먹기 위해 바르로 갔다. 그런데 알베르에게서 가까운 곳에 있는 바르는 문이 닫혀있었다. 분명히 조금 전에는 문을 열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더 가면 다른 바르들이 있으니 걱정할 건 없었다.

점심먹은 바르.jpg

오늘은 토르티야와 맥주, 그리고 처음으로 돼지고기가 들어간 보카디요를 주문해 먹었다. 그 정도면 양도 충분하고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기 맛도 좋았다.

보카디요.jpg

점심을 먹고 나서 맞은편에 있는 가게로 갔더니 물건은 많이 없었지만 다행히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그것도 용기가 도기(陶器)였다. 조금 무겁긴 했지만 들고 다닐 게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것까지 해결했다. 내일은 걷는 거리가 짧아서 아침에 서두를 필요도 없겠다.

간편음식.jpg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순례자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알베르게 오픈 시간이 따로 없지만 아무래도 걸어오는 시간이 있으니 이 시간에 많은 순례자들이 몰리긴 한다. 아무튼 오늘은 모든 게 빨리 끝났다.


저녁에는 가게에서 사온 파에야를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었다. 그런데 전에 프랑스길을 걸으면서 먹었던 맛이 아니다. 너무 퍽퍽했다. 그래도 오래 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게다가 고기덩어리도 꽤 컸다. 여기서는 고기 먹기가 쉽지 않으니 어떤 고기든 맛있게 먹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미노 열째날, 포르투갈레테에서 칸타브리아지방 온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