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18일 (일)
오늘 아침에는 어제 사다 준 동그랑땡처럼 생긴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는데, 주스를 함께 마셔도 먹기가 쉽지 않아 3분의2쯤만 먹고 버렸다. 뭔가 맛이 괜찮을 것 같아서 전날 사뒀다가 아침에 먹으려면 입맛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 알베르게에서 가끔 제공하는 3~4유로짜리 아침식사가 더욱 합리적인 가격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든 양껏 먹을 수 있으니까.
오늘은 조금만 걸으면 되기 때문에 아침에 늑장을 부리려고 해도 마땅히 할 게 없으니 평소처럼 일찍 출발하게 된다. 6시 이후에 일어나게 되면 화장실 이용도 쉽지 않으니 늦잠 잘 수도 없고, 아침까지 먹고 나서 알베르게에서 마땅히 시간 보낼 만한 것도 없다.
다른 날보다는 조금 늦게(그래도 7시 전이다) 알베르게를 나섰지만, 오늘도 제일 먼저 출발했다. 날이 밝지 않아도 포장도로만 걸으면 그런대로 괜찮다. 지도를 보면서 걸으면 되니까 카미노를 찾으려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가 카미노를 조금 벗어난다 해도 방향만 맞으면 이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니 이 또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매일 동트는 걸 볼 수 있는 시간인데, 아직은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날씨가 흐려서다. 그런데 오늘은 하필 동트는 바로 그 자리에 봉우리가 솟아있어서 볼 수 없었다. 사진을 찍으니 봉우리 양 옆으로 빨간 빛이 나뉘어진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앞으로도 기회는 만을 테니까.
지도를 보니 두 갈래길에서 바로 가는 길과 돌아가는 길로 나뉘었다. 정식 카미노는 돌아가는 길이고, 바로 가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럴 때는 언제나 바로 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거리가 조금이라도 짧아지니까. 그런데 가다 보니 길이 좁아지면서 잡목이 무성했다. 게다가 가시나무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제대로 된 길을 찾으려면 온몸에 가시공격을 받는다. 그래도 날이 점차 밝아오면서 길 찾기가 수월해졌다.
그렇게 가시밭길을 헤치며 언덕에 오르니 멀리 라레도(Laredo)가 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다음 마을인 산토냐(Santoña) 앞까지 펼쳐진 긴 해변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핸드폰으로 찍으려면 이런 한계가 있다.
라레도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까 거의 9시가 됐고 바르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아직도 준비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는데, 마침 이미 열어놓은 바르가 있어서 대뜸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자리잡고 오렌지주스와 핀초 하나를 주문했다. 그런데 핀초를 먹다 보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참치가 들어간 것 같아서 걷어내고 먹었다. 지금까지 아무 탈이 없는 걸 보면 참치를 그냥 먹어도 되겠지만, 냄새가 좋지 않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이제 푼탈(Puntal de Laredo)로 가서 산토냐로 가는 배(Paso con barca)를 타야 한다. 그런데 푼탈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다. 1시간 넘게 걸려서야 푼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푼탈까지 가는 동안 옆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옆에 언덕이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변으로 나가는 길이 보이는 곳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와 모래사장이 보였다. 이건 참을 수 없지! 배낭을 내려놓고 해변으로 나가 파도를 보면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라레도까지 오는 동안 바다를 만나면 항상 동영상을 찍어뒀다. 파도 치는 모습은 비슷하겠지만 바다를 만날 때마다 느낌을 모두 달랐다. 멀리서 바다를 바라볼 때도 있었고, 오늘처럼 바로 발 아래로 본 적도 있었다. 신발을 벗고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를 밟으며 걷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그럴 수는 없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또한 젖은 발을 말리는 것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저 구경만 하는 것으로도 대만족이었다.
해변에서 나와 다시 푼탈을 향해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씩 ‘부엔 카미노!’라고 해줬다. 의례적인 말일지라도 조금씩 힘이 났다. 푼탈에 도착해서 주위에 있는 작은 집들 중 하나가 배 타는 시설인 줄 알았는데, 그와 관련된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산토냐로 데려다 줄 조그만 나룻배가 오더니 모래사장에 세우고는 배를 탈 수 있도록 조그만 사다리를 내려줬다. 요금은 2유로. 산토냐까지 가는 데 5분 정도 걸렸다. 지난번 파사이 도니바네에서 2분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하면 긴 시간이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동영상을 찍었는데, 발 아래로 보니 시퍼런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발에 최대한 힘을 주고 있긴 했지만, 계속 긴장하면서 동영상을 찍었다.
산토냐에 도착해서 바로 앞에 있는 기념물(Monumento A Juan de La Cosa) 사진부터 찍고 알베르게(Albergue La Bilbaína)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찾아보니 알베르게는 카미노 바로 옆에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바로 BM(슈퍼마켓 프랜차이즈,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옆에 있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공원벤치에 앉아있는 마을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알베르게 주인이라고 알려줬다. 전화하고 있던 알베르게 주인은 잠시 후 내게 오더니 오후 2시에 문을 연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오픈시간이 낮 12시로 나온다고 했더니 잘못된 정보라면서, 지금 알베르게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배낭은 안에 들여놔도 된다고 해서 배낭을 얼른 문 안에 들여놓고 필요한 짐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먼저 마을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알베르게 주변에는 바르와 빵집들만 문을 열었고, 3개나 있는 슈퍼마켓은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더 이상 구경할 게 없어서 빵집을 겸하고 있는 바르로 들어가 빵과 음료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하고 보니 양이 너무 많았다.
토르티야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빵은 너무 짰다. 할 수 없이 콜라(슈퍼마켓에서 사면 1유로 정도인데, 2.5유로나 받았다)를 추가로 시켜 마셨다. 바르에서 최대한 시간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계속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오후 1시쯤 바르를 나와, 광장의 양지바른 벤치에 앉아 동영상도 보고 아이들이 공차시가며 노는 것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 알베르게는 주상복합건물 2층 일부를 쓰고 있었다. 숙박비는 14유로. 오픈시간인 오후 2시가 다 돼가는데 알베르게 주인은 전화만 계속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주인이 알베르게 문을 열면서 나를 불렀다. 오늘도 역시 내가 첫번째 도착이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접수대 앞에 앉으니, 순례자여권에 스탬프는 자기가 찍어줄 테니 숙박장부는 직접 적으라고 했다. 아마도 글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래도 샤워하는 곳과 화장실, 그리고 쉴 곳도 열심히 가르쳐줬다.
샤워를 마치고 간단한 빨래를 한 후에 일기쓰기까지 마쳤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저녁식사는 좀 전에 봐둔 ‘menu del día’를 먹으러 갈 예정이었다.
침대에 앉아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6시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할 수 없었다. 낮에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저녁 먹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식당들이 문을 닫았거나 내가 원했던 음식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먼저 13.9유로에 menu del día를 판다고 붙여놓은 식당에 가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지금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히 식당에 앞에 붙여놓고는 팔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기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런 경우를 종종 보기는 했다.
다른 식당을 찾아 나섰다. 먼저 닭고기를 판다던 식당(Pollos a la Brasa Jovar)을 찾아가니 이미 문을 닫았고, 15.9유로에 menu del día를 판다고 했던 식당 또한 문을 닫았다. 아마도 일요일이어서 일찍 문을 닫았다 보다. 다른 바르들을 둘러봐도 낮에 봤던 토르티야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는 맥주나 음료수만 파는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의 식습관을 잘 모르니 제때 음식을 찾아먹기도 쉽지 않다.
하는 수없이 빵을 사다 먹기로 했다. 점심에 갔던 바르에 다시 갔지만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다른 빵집을 찾아가니 빵은 많았지만 맘에 드는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소포장으로 파는 것도 별로 없다. 대부분 2~3번씩 나눠먹어야 할 양이지만, 들고 다닐 수는 없다.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카스텔라처럼 생긴 빵을 골랐다.
그런데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먹어보니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카스텔라인 줄 알았는데 부드럽지 않고 먹기에 너무 퍽퍽했다. 주스를 마시면서 먹어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면서 구입한, 길거리에서 직접 튀겨서 파는 추로스도 기대한 것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저녁을 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