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15일쩨, 산탄데르에서 산티야나 델 마르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21일 (수)


어제는, 당초에 계획했던 목적지인 산타크루스 데 베사나의 알베르게가 휴업 중이라 산탄데르까지만 걷다 보니, 오늘 가야 하는 산티야나 델 마르까지는 하루에 걷기에 좀 먼 거리(33.5km)여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어제 산탄데르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버스터미널이 알베르게와 가깝다는 걸 알아서 찾아가기도 쉬웠다.


평소에는 알베르게에서 아침 6시 반이면 짐을 챙겨 나오는데, 오늘은 최대한 오래 머물렀다. 규정상 8시까지는 알베르게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시간을 보내다 나왔다. 산티야나 델 마르로 가는 첫 버스가 10시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아직은 한참 동안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알베르게에서 나오자마자 가까이 있는 산탄데르 대성당에도 다시 가보고, 큰 선박이 정박해있는 바닷가 부두에도 가봤지만 오래 시간을 보내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곳은 꽤 큰 도시(172,221명[2021])라서 그런지 바르들이 문을 일찍 열었지만, 오늘은 아침을 챙겨먹고 나와서 바르에 들어갈 이유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터미널에도 바르가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 이왕이면 그곳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자리에 그냥 앉아있기에 미안해서 카페 솔로(café solo)를 주문하면서, 아메리카노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막상 나온 걸 보니 에스프레소였다. 그래도 그럭저럭 마실 만했다.


자리에 앉아 와이파이를 검색하니 패스워드가 필요 없는 아이템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제대로 연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나마 하나가 잠깐 연결됐다가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바로 연결이 끊겨버렸다. 그렇다고 로밍 데이터를 쓰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그럭저럭 1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오전 10시 조금 전에 버스티켓 파는 창구로 갔더니 산티야나 델 마르로 가는 티켓은 안내센터로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발길을 돌려 안내센터로 갔더니 그곳에서는 어디서 티켓을 끊고 버스를 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만 알려줬다. 나중에 보니 티켓은 버스기사가 버스 안에서 직접 끊어주고 있었다.


안내센터에서 알려준 대로 지하2층 5번 탑승구로 가니 버스가 와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출발시간까지 30분이나 남아있었다. 이 버스는 토렐라베가(Torrlavega)에 들렀다가 산티야나 데 마르에 정차한 다음 코미야스를 지나 산 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까지 가는 거였는데,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몇 명 더 있었다.


10시20분에 버스기사가 오더니 버스 안에서 발권하기 시작했다. 배낭은 버스의 짐칸에 실으라고 했다. 이 버스는 차 안에 발권기가 있어서 돈을 받은 후에 티켓과 거스름돈을 내줬다. 그러느라고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예정된 시간에 출발했다.


산티야나 델 마르까지는 40분 걸려 11시10분에 도착한다고 안내돼있었지만, 토렐라베가에 예정된 10시55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데다가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들어갔다가 돌아나오면서 3번이나 더 정차했기 때문에 토렐라베가를 벗어났을 때 이미 11시10분이 지나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늦어도 상관은 없었다.


산티야나 델 마르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반쯤이었다. 배낭을 멘 순례자들 몇 명이 버스에서 같이 내렸는데, 이후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 혼자 알베르게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보니 버스에서 내린 곳 근처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는 콘벤토(Convento, 수도원의 일종)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여서 이름도 알베르게 콘벤토(Albergue El Convento)였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마을주민에게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보니 주차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그 방향대로 걸어가다가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니 왼쪽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알베르게는 아직 문 여는 시간이 아니었다. 출입문에 붙어있는 안내문에는 오후 1시에 문을 연다고 써있었는데, 아직은 1시간 반이나 남아있었다. 그래서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어제는 너무 늦은 시간에 menú del día를 파는 식당에 찾아가서 먹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우연히 한 식당에 들어가니 menú del día라고 써있는 게 보였다. 가격은 18유로 정도여서 꽤 비쌌지만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서 지금 주문할 수 있냐고 하니까 오후 1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그 시간에는 알베르게에 가서 침대를 배정받고 씻은 후 빨래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2시 가까이 돼서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샌드위치로 점식을 먹었다.


바르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1시 조금 전에 알베르게로 돌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에 낯익은 순례자 둘이 더 왔지만 그들도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알베르게 문은 정확하게 1시에 열어줬다. 13유로를 내고 오늘도 첫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침실로 들어가니 한 방에 2층 침대 하나와 세면기까지 있었다. 어제, 먼저 떠난 조로부터 이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를 얻긴 했지만, 지금까지 묵은 알베르게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저녁식사는 10유로라고 했다. 8시에 먹는 게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젠 그것도 많이 적응이 됐다.

알베르게.jpg

침실 바로 맞은편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어서 그것 또한 좋은 점이었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좋은 침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 알베르게 직원에게 어디서 빨래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1층(침실은 2층에 있었다)으로 내려가면 빨래터가 있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보니 세탁기도 있었지만 손빨래 하기에도 좋도록 시설이 돼있었다. 오늘은 버스를 타서 조금만 걸었기 때문에 수건과 속옷만 빨면 돼서 빨래도 수월했다. 이제 어디에 널어야 하는지 찾고 있으니까 다른 직원이 야외 빨래줄을 가리켰다. 아, 저곳에 널면 빨래도 빨리 마루겠구나!


빨래를 널어놓고 마을구경을 위해 바로 알베르게 밖으로 나갔다. 이 마을은 인구(4,231명[2021])는 적지만, 역사가 아주 오래됐다고 한다(인근에서 1868년, 구석기시대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cueva de Altamira]이 발견됐다). 마을 안의 길들은 모두 작은 돌로 포장돼있었다.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건물들이 많이 있어서 신기했다. 산타 훌리아나 수도원(Colegiata de Santa Juliana)을 비롯해 돈 보르하 탑(Torres del Don Borja)과 메리노 탑(Torres del Merino)과 벨라르데 저택(Palacio de los Velarde)도 둘러봤다. 그리고 마을 이곳저곳을 모두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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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훌리아나 수도원.jpg
돈 보르하 탑.jpg
벨라르데 저택.jpg

이곳이 유서 깊은 곳이라서 그런지 사진을 찍으면서 마을을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다. 어제까지는 기온이 꽤 싸늘했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아주 맑고 햇볕이 따가웠다. 그렇게 1시간 반 가량 마을을 구경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산티야나 델 마르는 세가지 거짓 단어가 합쳐진 이름이란 재미난 얘기가 있었다. 이곳은 산티(Santi= Santa)란 호칭처럼 성스럽지 않고, 야나(llana, 평평한)의 뜻처럼 평원이 아닌 산지이며, 가까운 곳에 바다(mar)도 없다. 이름의 기원은 이곳의 교회(Colegiata)에 보존돼있는 훌리아나 성녀(Santa Juliana)일 것이라고도 했다.


저녁에는 알베르게에서 해주는 식사를 8시에 먹었는데, 그 시간까지 기다리느라고 매우 지루했다. 다들 모여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데, 20명이 넘게 모이니까 엄청 시끄러웠다. 나처럼 조용히 식사만 하는 사람은 몇 안되고 모두들 열심히 떠들어댔다.


이런 식사는 대개 1시간쯤 걸린다. 처음에 와인과 바게트 조각이 담긴 바구니를 내놓고, 잠시 후에 에피타이저로 수프가 나왔다. 뭐로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란 색이었다. 맛도 괜찮았다. 단지에다가 수프를 갖다 주는데 다들 먹어도 남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다음엔 메인 메뉴로 밥과 닭고기 수프를 줬다. 와인은 4명당 1병 정도로 주는데, 더 마시고 싶으면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2~3잔씩 마실 수 있으니 괜찮은 양이었다. 디저트는 푸딩 비슷한 음식인데, 밍밍하지만 맛은 괜찮았다. 다른 순례자들은 소금을 뿌려서 먹었지만 나는 그냥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디저트까지 먹고는 먼저 식당을 나와 침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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