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24일 (토)
아침 6시에 일어났는데 엊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엊저녁에 사다 놓은 즉석식품을 들고 전자레인지가 있는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닭고기와 버섯이 들어있는 건데 1분만 돌리면 된다고 쓰여 있어서 그렇게 했더니 조금 덜 데워진 것 같긴 했지만 그냥 먹었다. 디저트는 복숭아.
여기서 만난 순례자들은 대부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처럼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고, 7시나 돼야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출발할 때까지도 일어나는 순례자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밖에 비가 오고 있어서 문 밖에서는 배낭을 꾸릴 수 없어, 침실에서 최대한 조용하게 짐을 꾸렸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판초우의까지 뒤집어쓴 후에 오늘도 첫번째로 알베르게를 나섰다. 순례길 초반에 잃어버린 헤드랜턴을 대신해서 어제 조그만 후레쉬를 하나 샀었는데, 오늘아침 밤길에 비춰보니 성능이 너무 좋지 않았다. 차라리 핸드폰 불빛이 더 밝은 것 같았다. 잃어버린 헤드랜턴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이럴 때는 여러 가지로 좋지 않다. 먼저 판초우의를 입고 가야 하니 걷기 번거롭다. 그렇다고 비를 완전히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축축하다. 또한 빗속이라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빨래를 말릴 수가 없어 세탁기와 건조기를 써야 해서 추가비용이 든다. 아무튼 비 오는 카미노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콜롬브레스에서 야네스로 가는 카미노는 여러 갈래가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포장도로(N-634)를 따라 걸었다. 비가 올 때는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게 낫고, 좁은 길을 걸으면 풀잎에 맺힌 빗물 때문에 옷과 신발이 빠르게 젖기 때문이다. 부엘나(Buelna)를 지나 펜두엘레스(Pendueles)로 접어드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자 순례자 둘이 앞서 지나갔다.
오늘은 걷는 내내 비가 계속 오락가락 했다. 좀 그쳤다가도 이내 또 내리길 반복하는 바람에 바지와 판초우의도 말랐다 젖었다 했다. 가는 길에 좋은 풍경이 있어서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꺼내 얼른 사진을 찍고는 휴대폰을 판초우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11시 반쯤 됐는데, 라 센다 알베르게(Albergue La Senda del Peregrino)까지 4km 남았다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30분 더 걸어 야네스 마을이 보이는 곳까지 갔더니 거기서부터 카미노는 산등성이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산등성이를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저 멀리 야네스 마을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1시간20분을 걸어서 드디어 산등성이를 벗어났다. 그때부터 조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아직 야네스 시내는 물론 알베르게(Albergue La Estación)까지는 한참 더 가야 했다.
조금 더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비도 그쳤고, 축제를 하는지 다리 위에 광고물을 설치하고 카페들도 길거리로 나와있었다. 거기서 또 더 갔더니 알베르게가 있긴 한데, 내가 묵으려던 곳은 아니었다. 지도를 보면서 알베르게 근처까지 갔는데도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지도를 다시 자세히 봤더니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다.
드디어 오늘 묵을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어제 조가 예약해줬기 때문에 접수도 순조로웠다. 숙박비는 15유로, 내일 아침식사는 2.5유로였다. 내일 걸을 거리가 조금 짧기도 하고 아침식사도 6시 반이면 가능하다고 해서 함께 신청했다.
침대는 2층에 있었는데 출입문에 비밀번호가 설정돼있었다. 알베르게에 묵을 때 보면 가끔 이런 시스템을 가진 곳들이 있었다. 그렇게 비밀스러울 것도 없고, 혼자 쓰는 방도 아닌데 왜 비밀번호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도 2층 침대가 2개 있는 4명이 쓰는 방이었다.
샤워한 후에 옷을 빨아 건조기 앞에 두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또 다시 비가 내려서 판초우의를 입고 나갔다. 건조기 사용요금은 4유로였는데, 누군가 먼저 건조기를 돌리고 있어서 돌아와서 건조기를 돌리려고 했다.
알베르게로 들어온 골목을 나가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갔더니 오른쪽 골목에 식당들이 보였다. 첫번째 있는 식당에 ‘menú del día’ 간판이 세워져 있어서 물어봤더니 30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 오후 2시가 지난 시각인데 더 기다려야 한다고! 조금 더 앞으로 갔더니 다른 식당에도 같은 가격(14유로)의 메뉴가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에피타이저는 수프, 메인 요리는 닭고기, 그리고 디저트로 푸딩을 줬다. 수프는 좀 짜긴 해도 먹을 만했다. 그런데 닭고기는 너무 퍽퍽하고 함께 나온 감자도 비슷한 식감이어서 물이나 음료수 없이는 먹기가 쉽지 않았다. 반주로 주는 레드와인을 몇 잔 마셨더니 숨까지 가파왔다. 결국 닭고기는 다 먹지 못하고 남겨야만 했다. 그동안 벼르다가 먹은 거였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마지막에 나온 푸딩은 맛있었다.
점심 먹는 내내 엄청나게 쏟아지던 비가 점심을 다 먹고 나니 그제서야 그쳤다. 이제 가게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조금 가다가 과일가게에 들러 복숭아 2개를 사려고 했더니 5천원이나 한다고 해서 그 가게를 그냥 나왔다.
조금 더 시내 쪽으로 가다가 다른 가게에 들러 저녁거리를 찾으니 마땅한 게 없어서 납작 복숭아 2개만 사 갖고 나왔다. 가격은 2천원.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가격이었다.
조금 더 가도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서 알베르게로 돌아가다가 전자제품 가게를 지났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평일에는 오후 2시에 문을 닫았다가 5시면 다시 여는데, 오늘처럼 토요일에는 2시까지만 연다고 써 붙여놨다. 일요일에는 당연히 문을 열지 않는다. 이어폰을 사려고 했던 건데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알베르게에 돌아와서 보니 누군가 내 빨래를 건조기에 함께 넣어서 말려놨다. 다른 순례자 얘기로는 접수대에 가서 돈을 내라고 했는데, 그곳으로 갔더니 무슨 일이냐며 의아해했다. 결국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공짜로 빨래를 말린 셈이다. Good Luck!
좀 전에 가게에서 저녁거리를 찾지 못해서 일기를 쓴 후 저녁 7시가 지나서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점심 때 갔던 골목으로 다시 갔더니 점심을 먹었던 식당은 웬일인지 문을 닫았고, 그 다음에 있는 식당주인 아줌마가 대뜸 menú del día를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따로 생각해 놓은 게 없으니 OK다. 가격도 13유로로 점심보다 1유로 쌌다.
점심에 닭고기를 잘못 주문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물어보며 신중하게 주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림도 없는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걸 찾기란 쉽지 않았다. 주인 아줌마는 열심히 설명하다가 급기야 생고기를 직접 가져와 보여주면서 주문을 받아갔다. 오늘은 처음으로 시드라(sidra, 스페인의 전통사과주)로 맛봤다. 와인 대신 한 병을 갖다 줬지만, 맛은 별로였다. 경험 삼아 한번쯤 마시겠지만 두 번은 아닌 그런 맛이었다. 그래도 에피타이저(새우샐러드)와 메인 요리(돼지고기)는 맛있었다.
식사하는 동안 밖에는 다시 비가 오고 있었다. 판초우의도 안 입고 왔는데, 어떡하나! 조금이라도 비를 맞으면 축축하고 안 좋을 텐데. 다행히 식사를 끝낼 무렵에는 비가 거의 그쳐서 무사히 알베르게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