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19일쩨, 야네스에서 피냐레스 데 프리아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25일 (일)


오늘 아침에는 알베르게에서 6시30분부터 아침식사(desayuno, 2.5유로)를 준다고 해서 6시에 일어나 씻은 후에 바로 식당으로 갔더니 벌써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다만 우유와 주스, 그리고 커피는 6시15분부터 갖다 놨다. 그러니 이제 본격적인 아침식사 시작이다. 내가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다른 순례자들도 하나 둘씩 내려왔다. 아침식사가 푸짐한 건 아니지만 비교적 싼 가격에, 혼자 챙겨먹는 것보다 확실히 낫다.


아침 7시쯤 알베르게를 출발할 때 비가 올 듯 말 듯해서 일단 채비를 했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판초우의도 뒤집어 쓰고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쉬면서 판초우의를 벗어 정리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목적지까지 입고 걸었다. 그러는 동안 다시 비를 만나기도 했다.


바로(Barro) 마을에 가기 전까지는 카미노가 해변으로 이어졌다. 지난번 소모에서도 해변을 따라 걸었었는데, 그때만큼 해변카미노가 길지은 않았다.


출발하고 1시간 반쯤 걸었을 때 저 멀리 사진으로만 봤던 돌로레스 교회(Parroquia de Nuestra Señora de los Dolores de Barro)가 보였다. 그 옆에 마을이 있긴 했지만 카미노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먼 거리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카미노를 계속 걸어갔다.

돌로레스 교회.jpg

다리를 건너 엘 산틴 예배당(Capilla de El Santín en Niembro) 앞에서 카미노는 오른쪽의 니엠브로(Niembro)로 가는 포장도로 대신 왼쪽 산길로 이어졌다. 그렇게 산길을 계속 걷다가 다시 포장도로로 내려오니 옥수수밭 너머로 이제는 폐허가 된 산 안톨린 수도원(Monasterio de San Antolín de Bedón)이 보였다. 인터넷에는, 한 젊은 여자가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았던 자신의 애인을 죽이고 산 안톨린 교회(Capilla de San Antolín)로 피신해왔는데, 이 살인에 대한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원했던 무니오 로드리게스 카니스(Munio Rodríguez Canis) 백작이 12세기에 이 수도원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를 입증할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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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톨린 수도원.jpg

오늘도 해변을 지나긴 했지만 비 오고 흐린 날의 해변은 좀 쓸쓸하다. 맑은 날은 물도 파랗고 하늘도 파래서 사진 찍기에 좋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저 멀리서 바라만보면서 지나쳐갔다.


나베스(Naves) 마을의 조그만 바르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했는데,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바르였다. 맥주를 마시는 사이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비와 땀에 젖은 옷 때문에 몸도 으스스 떨렸다. 배낭에서 패딩을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비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아 밖으로 나가서 걷다가, 아무래도 알베르게 있는 곳에는 마땅한 먹을 거리가 없을 것 같아 발길을 돌려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아갔다.


조금 가다가 또 다른 바르에 들어가니 와이파이도 쓸 수 있고,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도 주문할 수 있었다. 손자한테 영어대회에 나간 것에 대한 축하인사도 하고 영상통화도 했는데, 다른 때처럼 역시 말을 하지 않고 하도 부산스럽게 움직여서 얼굴만 보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손자와 영상통화만 하면 대화하려고 하지 않고 좀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긴 했다.


바르에 배낭을 잠시 맡겨두고 가게를 찾아 나섰다. 딱히 무얼 살지 정해놓은 건 없었지만 구경하면서 필요한 걸 사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요일이어서인지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다행이 문이 열려있는 가게에 들어가 비스킷과 복숭아 2개를 샀다. 다시 바르로 가서 배낭을 짊어지고, 판초우의를 말릴 겸 다시 뒤집어썼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오늘 묵으려는 피레녜스 데 프리아(Piñeres de Pría)에는 알베르게가 2개 있는데, 어제 먼저 갔던 조에 따르면, 오늘 묵으려는 알베르게(Albergue Casa Recttoral)는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해서(하지만 잘못된 정보였다) 다른 알베르게(Albergue La Llosa de Cosme)를 찾아 카미노를 한참 벗어나면서까지 한참 동안 열심히 지그재그로 돌아갔는데, 지도에 알베르게라고 표시된 집에 도착해보니, 집 앞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역시 인터넷에는 오후 2시30분에 오픈한다고 돼있어서 그때까지 기다리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확실하지 않은 걸 두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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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포기하고 다시 오늘 묵을 알베르게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지도 앱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포장도로를 지나 좁은 산길로 접어들기 직전, 집안일을 하고 있는 주민에게 알베르게 위치를 물었더니 맞은편의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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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을 따라 걷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꽤 멀게 느껴졌다. 좀 더 가다 보니 언덕 위에 교회(Parroquia católica San Pedro de Pría)가 하나 보였다. 조의 말로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라고 했으니 그 근처에 알베르게가 있을 것 같았다. 비가 와서 미끄러워진 언덕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더니 교회 옆에 알베르게(Albergue Casa Recttoral)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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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알베르게 역시 오후 2시30분에 오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1시간 반 정도 기다려야 해서 그랬는지, 이 알베르게를 지나쳐 가는 순례자들도 더러 있었다. 대체 어디 가서 묵으려는 거지?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2시20분쯤 주인이 나와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오늘도 내가 첫번째로 접수했다. 그리고 주인에게 저녁 먹을 만한 곳을 물어봤더니 여기서 2km쯤 떨어진 나베스(Naves) 마을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어쩌지! 가게에서 사온 비스킷과 복숭아 만으로 저녁식사를 해야 하나?


잠시 후에 다른 순례자들이 새로운 정보를 얻었는지, 점심을 먹으로 갈 건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OK하고 바로 따라 나섰다. 나를 포함해서 넷이 산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조그만 마을이 나왔는데, 알베르게 주인이 가르쳐준 바르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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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다가 일하고 있는 주민에게 물어봤더니 조금만 돌아가면 식당이 있다고 했다. 정말 몇 발짝 더 갔더니 식당이 보이고 모여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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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들어가서 주문하는데, 메뉴판이 온통 스페인어라서 알 수가 없었다. 엊저녁엔 주인이 실물까지 보여주면서 설명해줬었는데, 여기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다행히 같이 온 순례자가 메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줘서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을 주문했다. 맥주와 커피도 마셨다. 요금은 17유로, 다른 순례자들은 시드라도 마셨지만 나는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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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난 후에 다른 순례자들 셋은 해변(Playa de Guadamía)을 보러 가겠다고 해서 나 혼자만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해변을 찾아보니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때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몸도 피곤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저녁에는 점심에 먹다 남아 싸 갖고 온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낮에 사온 비스킷은 너무 퍽퍽하고 복숭아는 시어서 조금 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남은 복숭아와 비스킷은 알베르게 냉장고에 넣어뒀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와이파이가 잘 연결되지 않아 한참 동안 기다리느라고 9시가 지나서야 침대로 가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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