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20일쩨, 피냐레스 데 프리아에서 라 이슬라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26일 (월)


어제는 당초 예정했던 쿠에레스(Cuerres)보다 4.6km 전인 피녜레스 데 프리아에서 묵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만큼 더 가야 해서 조금 일찍 출발하려고 알람을 5시45분에 맞춰놓고 잠을 잤었다.


그런데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밖에서 빗소리가 들렸다. 어쩌나? 비를 맞으며 출발하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아 조금 더 누워있었더니 빗소리가 좀 잦아드는 것 같아 바로 일어나 배낭을 꾸려 출발했다. 그 사이 알베르게 주인이 밖으로 나와 배웅해줬다.


아직은 주위가 어두운 새벽 6시10분.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서 교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갔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걷는 시간을 줄이고, 어두운 밤길에 안전을 위해 원래 카미노 대신에 리바데세야(Ribadesella)까지는 AS-379도로(Carretera de Ribadesella a Llanes)를 따라 걸었다. 이른 새벽이어서인지 차는 별로 다니지 않았지만, 차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휴대폰 불빛을 계속 켜고 걸었다.


그렇게 2시간 만에 리바데세야에 도착했는데, 아직은 해도 뜨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벤치에 배낭과 판초우의를 얹어 놓았는데, 이런! 밤새 내린 비에 벤치가 젖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벤치 옆에 내려놓고 주위사진을 몇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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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내 도로를 따라 계속 가고 있는데 바르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밖으로 내놓고 있어서 지금 오픈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9시에 열 거라고 했다. 아직 1시간 가량이나 남아있어서 기다릴 수 없으니 또 계속 걸었다.


등교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해변(Playa de Santa Marina)이 나타났다. 북쪽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해변은 비슷하긴 해도 볼 때마다 파도소리가 시원하고 멀리 바라보이는 지평선도 볼 만했다. 오늘도 여지없이 해변의 파도소리를 담아 동영상을 찍었다. 늘 비슷한 광경이라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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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지나 마을로 막 내려가려는 곳에 ‘Café/Tienda’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반가웠다. 그렇지만 아무리 걸어가도 바르나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바르나 가게들이 있다가 없어진 건가? 왜 안내판까지 세워놓은 거야? 대신에 집집마다 오레오(Hórreo)를 지어놓은 게 보였다. 형태는 비슷했다. 그렇지만 전에 프랑스길을 걸을 때 갈리시아 지방에서 봤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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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예배당을 지나다가 재미있는 벽화들을 그려놓은 마을을 지났다. 사람도 있고 소나 말도 있었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먼 곳에서 보면 실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보다 앞서 갔던 순례자 부부도 벽화를 유심히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다가 마을주민들에게 바르나 식당이 있는 곳을 물었더니, 한참 동안 설명하는데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는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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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 해변(Playa de Vega)에 도착해보니 2층 벽면에 커다란 물고기를 조각해놓은 식당이 있었는데, 현관문은 열려있었지만 울타리의 출입문은 닫혀있는 것을 보아 아직은 오픈시간이 아닌 듯했다. 아니, 휴업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니 그 사정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또 걸었다. 여기서도 해변 옆을 걷지만 사람은 만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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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조그만 언덕을 올랐다. 4시간 반을 걸은 끝에 베르베스(Berbes) 마을에서 드디어 조그만 조그만 카페(Casa Melin)를 만났다. 화장실부터 다녀와서 오렌지주스와 빵 하나를 주문해서 먹었다. 가격은 5유로. 카페를 막 나서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길래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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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순례자들이 앞서가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고 있었다. 이들이 오늘 어디까지 걷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서가는 순례자를 보면 어떻게든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는 빨리 걷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럴 땐 빨리 포기하고 내 페이스대로 걸으면 그만이다.


에스파사 해변(Playa La Espasa)을 지나는데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서핑보드를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서있었다. 아마도 단체로 강습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앞이 해변이니 곧 물로 뛰어들어갈 기세였다. 그런 그들을 사진에 담고 오늘의 목적지인 라 이슬라(La Isla)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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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에스파사에서 라 이슬라까지는 2km라고 했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 측정한 거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가다가 ‘La Isla’란 이정표를 봤는데도 마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카미노는 포장도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도록 나있는데, 나는 지도를 보면서 가기 때문에 그런 카미노 대신 포장도로를 계속 따라 걸었다.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La Isla)를 찾아가는데 바닥에 ‘AÓ’란 표시를 해놨다. 멀게만 느껴지는 길을 따라 알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곳은 알베르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뭐지? 밖으로 나와 울타리를 보니 예쁘게 그린 손그림들이 붙어있는 걸로 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게는 건물 왼쪽에 따로 출입구가 있었다. 울타리에 설치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알베르게 문은 닫혀있고, 출입문에는 오후 2시에 오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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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심도 먹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가게에도 들르면 좋겠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알베르게 옆에서 대화하고 있는 주민에게 물어봤더니 한참 동안 설명해주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걸어가다 다른 주민을 만나 한번 더 물어본 후에야 간신히 점심 먹을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했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Mixed Meat’란 단어만 보고 주문한 거였다. 맥주도 시켜서 먼저 마시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조금 황당했다. 얇게 저민 하몽과 소시지, 그리고 이곳에서 흔한 바게트였다. 가게에서 소시지 파는 걸 보긴 했지만 먹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몽도 보카디요에 들어있는 것만 먹어봤었다. 이름대로 고기가 섞여있는 것 맞지만 이런 모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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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를 조그맣게 잘라 소시지나 하몽과 함께 먹었더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생각만큼 짜지도 않았다. 다만 함께 나온 치즈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전에 먹어봤던 치즈냄새나 맛이 아니었다. 정말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다 먹었지만 치즈는 2조각만 먹었다.


식당을 나오는데 비가 오고 있었지만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면 바로 세탁할 거니까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그런데 좀 추워서 모자를 뒤집어쓰고 가게를 찾아 걸었다.


좀 전에 식당에 갈 때는 닫혀있던 가게 문이 열려있었다. 조그만 가게라서 물건이 많지는 않았지만 저녁에 먹을 간이식품과 사과를 하나씩 샀다.


알베르게로 돌아가니 막 문을 여는 참이었다. 배달해온 배낭은 몇 개 있었지만 접수는 오늘도 내가 첫번째였다. 숙박비는 10.5유로. 내일아침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라고 했다. 아침은 6시부터 먹을 수 있다고 하니까 얼른 먹고 출발하면 될 것 같다.


오늘은 손빨래를 해서 건조기를 돌리려고 했는데, 이 알베르게에는 건조기가 없어서 세탁기를 돌려서(3유로) 밖에 널었다.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맑아오고 있으니 잘 마를 것 같았다.


저녁에는 낮에 사온 닭 날개로 만든 즉석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바게트와 함께 먹었다. 가끔 ‘menú del día’를 먹으면서 과식할 때는 몸이 좀 불편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먹는 거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배고픈 건 아니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쉽게도 밖에 넣어놓은 빨래는 저녁 때까지 마르지 않아 빨래대를 침실에 들여놓고 밤새도록 말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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