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21일쩨, 라 이슬라에서 비야비시오사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27일 (화)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잠을 깼는데 5시30분이었다. 아침식사를 6시부터 할 수 있다고 해서 알람을 5시55분에 맞춰놨기 때문에 너무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시 침대에 누웠다가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세수한 후에 알베르게 입구에 있는 식탁으로 갔더니 우유, 커피와 빵들이 준비돼있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식탁 옆에 있는 빈 공간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자고 있었는데, 인기척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6시부터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주인도 그 시간이면 일어나야겠지만 내가 깨운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긴 했다.


오늘은 커피 대신 우유와 빵을 먹었다. 조그만 빵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부드러워 보이는 빵을 3개를 골라 먹었다. 배만 고프지 않도록 조금 먹는 게 활동하는 데도 좋은 것 같다.


오늘도 첫번째로 알베르게를 나섰다. 밤에 빗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비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흐리니 배낭커버를 씌우고, 판초우의도 가장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두고 출발했다. 라 이슬라에서는 카미노가 해변을 따라가도록 돼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N-632 도로까지 가서, 콜룽가(Colunga)까지는 이 도로를 따라 걸었다.


1시간 남짓 걸어 도착한 콜룽가는 아직 밝지 않았다. 그런데 콜룽가를 벗어나기 전에 문을 연 바르를 만났다. 8시에 문을 연 바르는 산탄데르에서 보고 처음이었다.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나도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다시 배낭을 메고 바르 밖으로 나왔는데, 어디서 출발했는지 순례자 한 명이 내 앞을 지나갔다. 걸음도 매우 빨랐다. 그러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건물 처마 밑으로 들어가 판초우의를 뒤집어썼다. 그런데 앞서 가던 순례자는 비를 맞으며 그냥 가더니 얼마 못 가서 결국 판초우의를 입었다.


라 예라(La Llera) 마을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흑인모자가 앉아있다가 버스가 오니까 엄마는 태우려고 하는데, 꼬마는 타지 않으려고 뭉기적거렸다. 어딜 가나 학교(유치원인지도 모르겠다) 가기 싫어하는 것 똑같다. 잠시 후 스쿨버스는 꼬마를 태우고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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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드로 페르누스 마을에 있는 교회(Iglesia de San Pedro de Pernús ) 사진을 찍고 있는데, 순례자 셋이 앞서 지나갔다.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으니 그저 내 페이스대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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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길을 걷다 보면 사과나무들이 많은데, 열매가 너무 작고 못생겼다. 얼마 전에 떨어져있는 사과를 하나 먹어봤는데 맛도 형편없었다. 아마도 시드라를 만드는 사과 같은데, 그래서 시드라 맛이 좀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대신에 오늘 지나오면서 무화과 열매를 많이 따먹었다. 그 전에도 종종 따먹었었지만 오늘이 가장 많이 먹은 것 같다.


여기는 무화과나무가 흔한 편이었다. 울타리 안에서 키우는 것도 있었지만 길가에 야생으로 자라는 나무들도 꽤 있었다. 주로 길가에 있는 무화과를 따먹었지만 가끔 울타리 밖으로 늘어진 가지의 열매들도 따먹었다. 가게에서 무화과 파는 걸 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상품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실제로 수확하는 것도 보지 거의 못했다. 며칠 전에 거리에서 무화과 파는 아줌마가 있는 걸 보면 이들도 먹긴 하나 본데, 언제나 무화과는 지천이었다. 다만 아직은 익지 않은 열매들이 많아서 한 두 개 정도씩만 딸 수 있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라 예라 마을을 지날 때 선인장 열매를 오랜만에 봤다. 지난 2014년 7월부터 14개월 동안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 하며 지낼 때는 많이 봤었지만, 여기서는 선인장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야자수 등 열대식물들은 자주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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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라요의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Sebrayo)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비야비시오사(Villaviciosa) 외곽에 들어섰는데, 카미노 화살표를 따라 언덕을 올라갔더니 뭔가 이상한 것 같아 그제서야 지도를 보고 잘못된 길인걸 깨달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 시내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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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들이 많은 곳을 지나 유명한 사과기념물(La Exaltación de la Manzana)이 설치돼있는 공원근처의 바르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눈길도 주지 않아서 좀 기다리다 바르를 나와 어제 예약해놓은 알베르게(Albergue El Congreso)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보니 공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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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찾아간 알베르게는 문이 닫혀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바르에 들어가 물어봤더니 뭐라고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베르게 입구에는 전화번호만 적혀있을 뿐 언제 문을 연다는 안내문도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이곳 비야비시오사에는 알베르게가 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알베르게(Albergue Villaviciosa)에 갔더니 다른 순례자가 먼저 접수 중이었고, 내 차례가 되니 예약했냐고 물었다. 침대가 없나? 걱정하면서 예약하진 않았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침대를 배정해줬다. 샤워부터 한 후에 빨래해서, 건조기에 돌려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했다(3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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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주인에게 내일의 목적지인 폴라 데 시에도의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Pola de Siero) 예약을 부탁했더니 그곳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일찍 도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일도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알베르게에서 내일 아침식사를 준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침을 먹지 않고 좀 더 일찍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알베르게 주인에게 슈퍼마켓 위치를 물어보니 곧바로 가면 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도로를 따라 조금 갔더니 슈퍼마켓이 있었다. 처음에는 점심을 먹고 슈퍼마켓을 갈까 망설였지만, 슈퍼마켓에서 점심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먼저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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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이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비야비시오사 인구가 1만5천명 정도니 작은 규모도 아니었다), 살 수 있는 게 골고루 있었다. 그 슈퍼마켓을 샅샅이 뒤져 점심으로 먹을 파에야와 저녁에 먹을 훈제 통닭을 한 마리 샀다. 또한 오렌지주스와 복숭아, 요구르트까지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비용은 15유로 정도. 두 끼 식사비용으로는 괜찮은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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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주방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데워 파에야를 데워서 먹었다. 파에야를 먹을 때마다 늘 그랬었지만 쌀이 조금 설익은 것 같은 식감이 좋지 않았지만 그런 걸 가릴 게재가 아니었다. 전에는 전자레인지에 조금 오래 돌려서 익혀먹었었는데, 오늘은 포장지에 있는 정보대로 2분만 돌렸더니 설익은 느낌이 더했다.


날씨가 아주 좋아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고 빨래를 햇볕에 그냥 말려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곳의 날씨변덕이 좀 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녁에는 동영상을 보다가 7시쯤, 낮에 사다 놓은 훈제통닭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으려고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전자레인지를 먼저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서 잠시 기다렸다가 5분간 돌려서 복숭아, 요구르트, 오렌지주스 등과 같이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알베르게에 머물 때마다 여러 번 마주쳤던 순례자 커플이 브로콜리 데친 것과 밥을 줬다. 통닭만 먹기엔 조금 퍽퍽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다. 고마워서 나중에 한복카드를 한장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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