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28일 (수)
아침에는 조금 일찍 일어났다(5시45분).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공식거리 24.1km) 오늘 묵을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Pola de Siero)는 예약도 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든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6시부터 아침식사 할 수 있도록 식당에 차려놨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우유만 한잔 마시고, 빵 2개를 배낭에 넣은 후 곧바로 출발했다.
출발한지 30분만에 산 후안 샘(Fuente de San Juan de Amandi)까지 갔는데, 거기서 카미노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오비에도(Oviedo)와 히혼(Gijón, 아스투리아스어[asturiano] Xixón)으로 가는 갈림길은 아직 한참 남았었는데, 여기라고 착각하고 오른쪽 길로 한참 동안 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지도를 봤더니 역시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느라고 아까운 시간을 20분이나 허비한 셈이었다.
어둠 속을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걷고 있는데 자동차들이 몇 대 지나갔다. 그래도 길 옆으로 최대한 붙어서 걸으니 위험하지는 않았다. 차들도 깜깜하니까 빨리 달리진 않았다. 산 후안 샘에서 35분 정도 걸어서 드디어 오비에도와 히혼 갈림길을 만났다.
이곳에는 갈림길 표지석이 설치돼있지만 어두워서 주위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산티아고 북쪽길은 여기서 히혼 방향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유서 깊은 도시인 오비에도를 들러가기 위해 오늘은 폴라 데 시에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비에도 방향은 왼쪽으로 가야 한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1시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오늘은 대부분 포장도로를 걸었다. 지름길로 가기 위해 일부러 걸은 구간도 있고, 카미노를 잘못 찾아 바로 옆에 있는 포장도로를 걸은 적도 있었다. 포장도로를 걷다가 지도를 보니 왼쪽 산능선을 타고 카미노가 표시돼있는데, 그 길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지나면 포장도로와 카미노가 만나기 때문에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한참 걷다가 오른쪽 아래를 봤더니 저 멀리 발데디오스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ría de Valdediós)이 보였다. 산티아고 북쪽길 가이드북을 보면, 이 수도원을 지나는 루트는 오랫동안 가파른 산을 올라가야 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어림잡아도 고도차이가 200m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만큼 더 올라와야 하는데, 산길이 급경사여서 힘들 것 같았다. 산이 높아서 그런지 꼭대기에는 구름이 걸려있었다.
라 캄파(La Campa) 마을에서 오늘도 스쿨버스를 만났다. 엄마들이 넓은 주차장까지 승용차로 애들을 데려와서 태우는 걸 사진 찍었더니, 버스에 탄 애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애도 재미있는 광경이었을 거다.
10시 반쯤 라 카르카바다(La Carcabada) 마을에서 오늘 처음으로 바르를 만났다. 그 후로도 걷는 내내 보지 못했으니 오늘의 유일한 바르였다. 바르에 들어가 늦은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또 비가 왔다. 많이 내리는 건 아니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니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러니 차리리 판초우의를 계속 입고 걷는 게 편하다.
바르에서 나오면 카미노는 오른쪽의 베가(Vega)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지름길로 가기 위해 왼쪽 길로 걸었다. AS-267 도로를 1시간 이상 걸어서 N-634 도로와 만나 폴라 데 시에로까지 갔다. 그렇게 해서 1시간 정도 더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 대문이 열려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인터넷에는 1시30분에 오픈한다고 했지만, 그런 안내문은 붙어있지 않고 전화번호만 몇 개 보여서 제일 위에 있는 번호로 전화했더니 한참 동안 스페인어로 얘기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 문을 연다는 건지?
나무벤치에 조금 앉아있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맞은편에 있는 바르로 갔다. 식사를 주문하겠다니까 자리를 잡아줬다. 맥주를 먼저 달라고 한 다음 돼지고기 요리도 주문했다. 나중에 나온 요리를 보니 양이 많았다. 고기는 조금 질기고 감자튀김은 퍽퍽했다. 맥주가 아니라 주스나 콜라와 함께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양이 많아서 먹다가 남은 걸 싸달라고 했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해도(20유로), 저녁까지 먹을 수 있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가격인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직원이 와있었다. 신상을 기록하고 주인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더니 두 사람이 먼저 와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는 모두 18개의 침대가 있다고 했는데, 2층에는 단층침대 4개만 배치돼있었다. 아마도 다른 방들이 또 있나 보다.
샤워를 마치고 빨래까지 한 후 슈퍼마켓을 찾아 나섰다. 알베르게 문을 열고 나갔더니 손자를 수레에 태워서 끌고 가는 남자를 만나, 슈퍼마켓 위치를 물었더니 자기도 그 방향으로 간다면서 한동안 같이 걸었다. 그러다가 헤어지는 지점에 이르러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멀리 슈퍼마켓이 보였다. 어제 비야비시오사에서 갔던 곳과 같은 이름의 슈퍼마켓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옷 말리는 게 어렵다. 이 알베르게에는 세탁기는 물론 건조기도 없어서 최소한의 빨래만 했다. 그런데도 밤새도록 말려야 할 것 같다.
저녁에는 점심 때 먹다 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웠는데도 고기는 역시 질겼다. 그래도 복숭아와 토마토를 잘라 같이 먹었더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다행히 감자는 훨씬 부드러워져서 먹기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