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29일 (목)
침대 곁에 콘센트가 없으면 불편하다. 어제 저녁에 다른 곳에서 충전하면서 인터넷을 조금 봤지만, 자리가 편치 않아 침대로 가서 일찍 잤다(8시30분). 한참 자고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더니 밤 2시였다. 다시 잠을 잤는데, 새벽녘에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왔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원인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통증이 멎어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오비에도까지 5시간 정도만 걸으면 돼서 6시에 일어나 정리한 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것 같아서 배낭커버를 씌우고 판초우의도 입었다. 설령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판초우의는 바람막이로도 괜찮은 편이다.
아침 8시가 되지 전까지는 어둠 속을 걷기 때문에 카미노를 잘 찾아가는 게 우선이다. 다행히 카미노가 표시된 지로를 보며 걸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어두우면 주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걷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주위가 온통 불빛인 지역이 나타났다. 오늘의 목적지인 오비에도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여기는 어디지? 불빛 나는 면적으로 봐서도 꽤 넓은 지역이었다.
1시간 정도 걸어서 베론(Berrón) 마을을 지났는데, 7시밖에 안된 시간인데도 문을 연 바르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한곳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바르를 나가려는데 또 비가 오는 것 같아서 판초우의를 다시 뒤집어썼다.
매일 지나는 풍경들이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그러니 보는 재미가 있다. 각 자치지방(스페인에는 17개 자치지방[comunidad autónoma ]이 있는데, 북쪽길은 그중에서 4개 자치지방[바스크,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을 지난다)을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카미노를 표시하는 여러 방식들이 다르다. 그래도 한가지 비슷한 것은 노란 화살표(flechas amarillas, 세브레이로[Cebreiro] 마을의 사제였던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Elías Valiña Sampedro]가 1985년부터 표시하기 시작했다)인데, 아스투리아스 지방에는 이전 지방들보다 좀더 많이 표시해놓은 듯하다. 길을 걸으면서도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늘 확인하게 되는데, 노란 화살표를 보는 순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오전 9시20분쯤 코요토(Colloto) 마을을 지나는데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이번주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지만 오늘처럼 큰 비는 처음이었다. 판초우의를 뚫고 속옷까지 몽땅 젖을 만큼 많이 내리는 비였다. 그렇다고 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내릴지도 모르니까 그냥 비를 맞으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비에도 초입에서 흥미로운 구조물을 봤다. 일반적으로 다리나 고가도로 교각들은 곧게 뻗어있는데, 이곳을 지나는 고가도로 교각은 사선으로 여러 개를 설치해놨다. 교각 색깔도 빨간색과 파란 색으로 돼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곳을 지날 즈음에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10시 반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이 저마다 전시장을 마련해 놓은 지역을 지날 때 갑자기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조금 말라가던 옷이 다시 젖기 시작했다. 이젠 한기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세계 유수의 자동차회사들 중에 현대자동차도 한군데를 차지하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전시장 건물을 봐도 다른 회사들에 뒤지지 않은 규모였다. 날씨가 좋으면 좀더 보고 싶지만 이런 날을 빨리 알베르게를 찾아가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비는 오비에도의 알베르게(Albergue Turistico La Peregrina)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그렇지만 알베르게 문은 아직 잠겨있었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바르로 가서 알베르게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알베르게 입구에 있는 번호로 전화해봤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상대방은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고,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았다.
다시 바르로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 선택한 메뉴는 닭고기였다. 여기 음식에는 감자가 곁들여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콜라까지 시켜서 먹었더니 맛이 좋았다. 그런데 비를 맞은 상태에서 계속 앉아있으니까 너무 추워서 젖은 점퍼와 티셔츠를 벗고 배낭에서 다른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바르 주인이 알베르게는 낮 12시에 열 거라고 알려줬다. 점심을 먹고 나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점심을 다 먹고 계산하고 있는데, 알베르게 주인이 바르로 어더니 알베르게 문을 열었으니 이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계산한 후에 벗어놓은 옷과 배낭을 챙겨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그 짧은 동안에도 내리는 비를 피하지는 못했다.
인터넷에는 알베르게가 오후 1시에 문을 연다고 돼있었지만, 입구에는 그런 안내문이 없었다. 아무튼 알베르게로 들어가 20유로를 내고 접수를 마쳤다. 지금까지 묵었던 알베르게 숙박비 중에서 가장 비싼 곳이었다. 어제 부킹닷컴(bokung.com)으로 예약하려다가 숙박비가 20유로라고 해서 예약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는 15~20유로로 나와있어서 현장에서는 15유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옷을 세탁한 후에 건조기를 사용해서 말렸다. 세탁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말리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궂은 날에는 빨리 말리는 게 맘이 편하다.
오후에도 계속 비가 내려서 알베르게를 나갈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 비가 조금 그치는 것 같아서 저녁에 먹을거리를 사러 나갔는데, 또 비가 내렸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가게로 들어가 물건을 좀 사긴 했지만 저녁거리 정도는 되지 못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좀더 멀리 있는 가게까지 가서 다양한 물건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먹을 것만 조금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가려는데 다시 빗줄기가 굵어졌다. 잠시 바르에서 쳐놓은 천막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오래 내릴 것 같아 바르 안으로 들어가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비 내리는 광경을 감상했다. 바로 앞에 빨간 자동차가 주차돼있었는데, 비 내리는 풍경과 분위기가 잘 맞는 것 같아 동영상을 찍었다.
바르에 계속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빗줄기가 좀 가늘어질 때 알베르게로 갔다. 하지만 알베르게에서도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다였다.
오후 7시쯤 비가 그친 것 같아서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간 김에 대성당(La Santa Iglesia Basílica Catedral Metropolitana de San Salvador de Oviedo) 쪽으로 가봤다. 그곳에는 사진으로 봤던 대성당 첨탑이 높이 솟아있었다. 비가 그쳐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대성당 앞 광장 한편에서는 가이드가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도 광장을 한바퀴 돌아본 후에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아 나섰다. 늘 그랬듯이 이곳 식당의 식사시간을 알 수 없었다. 점심 때 떠들썩하던 식당들 중에 저녁에는 문을 닫는 집들이 많았다. 언제 다시 여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결국 알베르게 맞은편에 있는,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계란프라이에 저민 고기를 넣은 음식을 주문했더니 식당 주인이 그림까지 보여주면서 맞느냐고 물었다. 좀 낯선 그림이긴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음식이 나왔는데, 역시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계란과 돼지고기가 섞인 것이니 못 먹을 게 없지!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려는데, 계산서를 보니 빵 값이 포함돼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바게트 몇 조각쯤은 무료로 줬는데 여기서는 돈을 받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점심 때는 빵에 손도 안대고 그냥 나왔었다. 아까워라! 다행히 저녁에는 거의 다 먹고 남은 1개는 내일 아침에 먹기 위해 싸 갖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