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30일 (금)
아침에는 6시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세수한 후에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 시간에 일어나는 순례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어제는 정말 조용하게 잠잘 수 있었다. 침대들 간격이 넓은 데다가 내 침대 위층은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7시20분쯤 다시 일어나 아침에 먹을 걸 전부 들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엊그제 먹다 남은 샌드위치와 어제 식당에서 가져온 바게트 한조각, 그리고 요구르트와 사과, 콜라 한 캔 등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가 짐을 챙겨 현관으로 갔다. 8시가 다 되가는데도 아직 잠자리에 있는 순례자들이 있어서였다. 도대체 저들은 언제 일어나는 거야?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알베르게에 있는 건 처음이어서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는 순례자가 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짐을 다 꾸리고 나서도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보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오비에도에서 히혼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계획한 날이다. 산티아고 북쪽길은 비야비시오사에서 히혼으로 이어지는데, 나는 폴라 데 시에로를 거쳐 프리미티보 길(Camino Primitivo)의 출발지인 오비에도로 왔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북쪽길로 가는 카미노는 아빌레스(Avilés)로 이어지는데, 나는 그 전 도시인 히혼을 거쳐가고 싶어서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오비에도에서 히혼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부터 있다고 했고, 알베르게에서 오비에도의 버스터미널(Estación de Autobuses de Oviedo)까지는 1km도 채 되지 않았다.
오전 9시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날씨가 좀 흐리긴 해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지도에 터미널을 표시해놓고 길을 찾아갔다. 거리가 멀진 않아도 방향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몇 번이나 확인하며 걸었다.
오늘은 화장실엘 2번이나 다녀왔는데도 또 배가 아팠다. 그런데 버스터미널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을 게 뻔했다. 유럽의 공공시설 화장실 사정이 너무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유로인 화장실도 있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바르를 이용하는 거다. 물론 커피나 맥주 한잔 정도는 마셔줘야 하겠지만, 그냥 나와도 상관은 없다. 바르주인이 뒤에서 싫은 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바르에 들렀다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매표창구로 갔더니 9시45분 차표를 팔고 있었다. 이 차가 첫차인지는 모르겠지만, 10시 전부터도 히혼 가는 버스가 있었다. 오비에도와 히혼까지는 30km가 채 안되어 바삐 걸으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다. 버스는 오비에도에서 히혼으로 가는 직통이었다. 하긴 가는 동안 정차할 만한 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히혼 시내를 가로질러 버스터미널(Estación de Autobuses de Gijón)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예약해놓은 숙소(Hospedaje Don Pelayo)를 찾아가야 했다. 히혼이 큰 도시는 아니어서(268,896명[2021]) 많이 걷지 않아도 된다. 지도를 보면서 여러 번 크고 작은 도로를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대문이 잠겨있어서 어쩌나 했는데, 마침 누군가 밖으로 나오면서 문이 열리고 그 틈에 안으로 들어갔지만, 숙소입구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벨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하긴 이 숙소를 예약할 때, 오후 2시에 문을 열긴 하지만 내게는 12시에 들여보내주겠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11시도 안된 시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다시 메고 숙소 밖으로 나와(배낭을 안에 두고 와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을 나중에 했다) 가까운 해변으로 향했다. 여러 번 보는 해안이지만 오늘도 파도 치는 해변은 보기에도 듣기도 좋았다. 오늘 기온이 15도 정도라는데, 파도를 향해 서핑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저 멀리 히혼의 중심지역인 시마데비야(Cimadevilla, 아스투리아스어: Cimavilla[공식명칭])가 보였지만, 그곳까지 가보기엔 너무 멀어 보였다. 지도를 보면 히혼 사인(Las Letronas), 시드라의 나무(Árbol de la Sidra)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고 나오는데, 그저 그림으로만 보고 만족해야 했다.
해변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너무 눈이 부셔서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가늠하면서 몇 장 찍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땀이 났다. 오늘은 숙소에서 빨래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땀이 나면 안 되는데.
해변을 벗어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숙소 맞은편에 있는 바르로 들어가서 맥주를 한잔 시켜놓고 인터넷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12시쯤 숙소로 가서 벨을 눌렀다니 문이 열렸다. 2층으로 올라가 접수한 후에 침실을 배정받았다. 가격이 꽤 비싼(50유로) 숙소인데도, 방에는 침대와 세면기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지만 낮에는 사람이 없으니 사용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배낭을 침실에 두고 점심을 먹으로 밖으로 나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어느 바르에 들어가 닭고기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로 점심을 먹었다. 이제는 저녁거리를 장만해야 했다. 저녁 먹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이 숙소는 데워먹을 수 있는 가스레인지가 없으니 그냥 먹을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가게를 한바퀴 돌았더니 김밥과 초밥이 든 도시락이 있었다. 그런데 양이 조금 적어 보이지만 2개를 살 정도는 아니었다. 과일은 낱개로 파는 게 없어서 사과를 잘라 소포장 해놓은 걸 한봉지 샀다. 그렇게 저녁거리를 마련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가게에 들러 12유로(원가격은 15유로)로 양말도 2켤레 샀다. 그 가게에서 파는 양말 중 가장 저렴한 것이었다. 지난번에 양말을 산 적이 있었는데, 한 켤레에 3천원이나 하는 양말이 2~3번밖에 신을 수 없도록 허접했었다. 이번에 산 건 좀 두툼하니까 그보다는 오래 신을 것 같았다(귀국할 때까지 번갈아 가며 잘 신었다).
여기서 물건을 사면서 한가지 애로사항은 품질은 차치하고라도 포장단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과일은 낱개로 파는 가게들이 꽤 있지만, 음료수나 물은 작은 병들이 없고 요구르트 등도 4개 이상씩 포장된 게 대부분이었다. 빵도 1~2개만 사면 좋겠는데, 그런 걸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떨 때는 할 수 없이 여러 개를 사서, 다 들고 다닐 수 없으니 필요한 것만 챙기고 버린 적도 있었다.
저녁에는 낮에 가게에서 사온 김밥과 초밥이 들어있는 도시락과 사과파이를 먹었다. 김밥에는 간장도 들어있었지만 포장지를 뜯을 수가 없어서 그냥 먹었다. 김밥에 들어간 재료도 간단하고 초밥에는 와사비도 들어있지 않아서 제대로 된 맛은 아니었지만 시장이 만찬이라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여기 와서 김밥과 초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해도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