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26일째, 아빌레스에서 무로스 데 날론까지

by 이흥재

2022년 10월2일 (일)


오늘은 25km 정도 걸어야 해서 5시45분에 맞춰놓은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요즘 머무르는 도시들(오비에도, 히혼, 아빌레스 등)은 면적이 넓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알베르게를 나가도 길가의 가로등이 환하고 문을 열어놓은 바르들이 있어서 걷기에는 아주 좋았다. 오늘도 7시 전에 문을 연 바르가 있어서 주스와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그 후로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Muros de Nalón)에 도착할 때까지 바르를 만나지 못했다.


북쪽길은 프랑스길과는 달리 포장도로를 걷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자동차들이 꽤 지나다니는 지방도를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인구는 비슷하지만 면적이 훨씬 넓어(5배 정도), 지방도로에 차들이 많진 않아도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언제나 신경 쓰면서 걸어야 한다. 어떤 때는 공식 카미노가 구불구불 돌아가도록 해놓은 경우도 있어서 일부러 포장도로를 따라 가는 경우도 있었다.


산속을 걷거나 포장도로를 따라 걷거나 나름대로 좋은 점들이 있다. 포장도로를 면이 고르기 때문에 발을 헛디딜 염려가 없는 대신 바닥이 딱딱해서 발의 피로가 빨리 온다. 반면에 산속 흙길은 부드러워서 걷기 좋지만 너덜길(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을 만나면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있어서 온몸이 휘청거리고 때론 발목을 다칠 수도 있다. 그러니 정해진 대로 쉬운 길을 택해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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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왼쪽발목이 유난히 아팠다. 프랑스길을 걸을 땐 오른쪽 발목이 아팠었는데, 비슷한 증상이 왼발로 옮아갔다. 처음엔 발목만 아프더니 잘못 힘을 주다 보면 그 통증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그 동안 발목이 계속 아픈 걸 참고 걸었었는데, 누적돼서 그런지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오늘은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갖고 온 파스를 붙여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오르막길이 유난히 많았다. 여러 마을을 지났는데 대부분의 마을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그 마을로 올라가느라고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야 차를 타고 다니겠지만 잠깐이라도 걷는다면 그들도 힘깨나 빼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인 무로스 데 날론(Muros de Nalón)을 2km쯤 남겨두고도 카미노는 언덕을 오르도록 나있었다. 발목은 점점 아파오는데 그 언덕을 오를 자신이 없어서 포장도로(N-632)를 따라 계속 걸었다. 그 도로는 무로스 데 날론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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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스 데 날론도 도로에서 한참 동안 올라가야 했다.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더니 바로 옆에 알베르게(Albergue Camino de la Costa)가 있었다. 그것도 지도상으로는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한 알베르게였다. 오늘도 카미노를 잘못 걸어온 것이다. 그래도 오늘의 목적지에 무사히 온 것이라서 별 문제는 없었다. 무로스 데 날론에는 알베르게가 3개 있는데, 당초에는 중간에 있는 알베르게(Albergue Turístico Casa Carmina)에 묵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곳까지 거리가 꽤 멀었다. 더구나 그 알베르게가 지금 알베르게보다 더 낫다는 보장도 없어서 그냥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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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문 앞에 오픈시간이 오후 2시란 안내문을 붙여놨길래 맞은편에 있는 바르로 가서 맥주 한잔을 마신 후에 알베르게로 돌아와 배낭을 내려놓고 슈퍼마켓에라도 다녀오려고 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카페주인이 지금 바로 알베르게에 들어가도 된다고 했다. 알고 보니 카페와 알베르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1시도 되기 전에 알베르게로 들어갔는데, 아직은 아무도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카페와 알베르게를 함께 운영하다 보니 알베르게 관리가 어려워서인지 출입문에 비밀번호를 설정해놨다. 그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특이하긴 했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면 처음 하는 일은 언제나 똑같다. 주인에게 받은 침대커버와 베갯잇을 씌워놓고 샤워부터 한 수에 빨래하는 게 순서다. 이곳에는 건조기는 없었지만 빨래하는 곳 바로 옆에 짤순이가 있어서 아주 편리했다. 아무래도 손으로 짜면 물기가 많이 남기 마련인데, 꼭 짤 수 있어서 그만큼 더 빨리 말릴 수 있으니 좋다.


빨래를 넣어놓고 1층 카페로 내려가서 슈퍼마켓 위치를 물었더니 앞으로 쭉 가면 된다고 했다. 좀 전에 바르에서 토르티야 1개를 먹었어도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알베르게에 전자레인지가 없으니 어제 사놓은 파에야를 데워먹을 수도 없었다. 다행히 바게트 한조각이 남아 있어서 함께 먹을 과일과 음료수를 사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갔다.


그런데 규모가 작은 슈퍼마켓이라서 복숭아도 없고, 사과도 품질이 별로 좋지 않아 처음 마주하는 대추야자(date palm)를 샀다. 지난 2015년 9월, 에티오피아에서 14개월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두바이에 잠시 들렀을 때 공항에서 처음 본 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했다(250g 1.45유로). 양도 많아서 한꺼번에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저녁 때까지 먹어도 남을 것 같으니 싸 갖고 다니면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주스 등 음료수와 우유는 용량이 너무 큰 것들만 있어서 하는 수없이 콜라 한 캔과 사과 하나, 요구르트와 대추야자를 사와서 바게트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배 고픈 건 나아졌지만 목이 자주 말랐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은데 냉장고도 없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7시쯤 알베르게 주인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 1층의 카페로 내려갔더니 8시부터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식사시간을 잘 맞춰야 굶지 않고 지낼 수 있다. 맥주나 커피, 그리고 간단한 음식은 아무 때나 팔지만 식사할 수 있는 음식은 점심 때나 저녁 때 모두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이 아니면 팔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식당마다 또 다르니 언제나 알아보면서 다녀야 제때 식사를 할 수 있다. 다른 식당을 찾아가도 되겠지만, 그곳에도 마땅히 먹을 게 있을지는 알 수 없으니 8시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시 침실로 돌아가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8시가 되어 다시 카페로 갔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주인이 번역기까지 보여주는데, 감자가 들어간 고기요리였다. 무슨 고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고기든 좋으니까 얼른 주문을 마쳤다. 가격은 11유로. 맥주도 한병 시켰다.


음식이 나왔는데 고기가 너무 퍽퍽하다. 지방이 전혀 없는 부위를 써서 그런 것 같다. 이럴 때는 김치가 필요한데! 점심 때 가져온 바게트도 먹기 쉽지 않은 것 마찬가지였다. 그저 맥주를 마시면서 조금씩 먹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알베르게나 밤 10시면 불을 끄고 자야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니까 8시간 동안은 잘 수 있다. 물론 잠자는 동안 코 고는 사람도 있고 화장실 가는 사람도 있으니 그때마다 깰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움직일 때마다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도 난다. 오늘밤은 유난히 그 소리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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