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27일째, 무로스 데 날론에서 소토 데 루이냐까

by 이흥재

2022년 10월3일 (월)


아침 6시에 일어나 짐을 다 들고 식당으로 가서 배낭을 꾸렸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걷는 거리가 짧긴 해도 출발시간은 언제나 같다. 빨리 걷지도 못할 뿐더러, 되도록이면 알베르게에 일찍 도착해서 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제 시골마을에서 묵어서 그런지 알베르게에서 나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바로 숲이 나왔다. 깜깜한 밤에 핸드폰 불빛에만 의지해서 30분 이상 숲속을 걸었더니 아무런 소리나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무서움이 몰려와 몇 번이나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았다.


숲속을 빠져나오니 또 오르막이 이어졌다. 누군가 북쪽길의 특징이 오르막이 많은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프랑스길의 경우 메세타(meseta)라고 해서 며칠씩 평지만을 걷는 것에 비하면 하루에도 산을 몇 개씩 오르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산길.jpg

2시간쯤 걸었을 무렵 순례자 한 사람이 나를 앞서 갔는데, 조금 있다가 다른 순례자 커플이 또 앞서나갔다. 어디에서 묵었는지, 언제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걸음은 매우 빨랐다.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도 그들을 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갔나 보다.


오늘도 걷는 중간에 바르를 만나지 못했다. 숲속 길을 지날 때는 물론이고 마을을 가로질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걷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소토 데 루이냐(Soto de Luiña) 마을 초입에 와서야 비로소 바르를 만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맥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신발을 벗었더니 주인이 실내에 부착된 그림을 가리키면서 실내에서는 신발 속의 먼지를 털지 말라고 해서 밖으로 나가 신발을 털고 다시 들어가서 주문한 음식을 먹었다.


식사하면서 오늘 묵을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Soto de Luiña)를 지도에서 검색해봤더니 400m쯤 더 가면 됐다. 아직은 알베르게 오픈까지는 이른 시간이지만 배낭으로 놓고 나오기 위해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알베르게는 사진으로 봤던 것에 비해 규모가 작았는데,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놀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알베르게와는 출입구가 달라서 알베르게 출입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필요한 물건만 꺼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jpg

알베르게 오픈시간까지는 2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야 해서 또 다른 바르로 들어가 먼저 커피를 주문했다. 그 바르에서는 패스워드 없이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한동안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낮 12시에 점심을 먹기 위해 토르티야와 맥주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데 내 실수로 맥주컵이 넘어지면서 깨지고 말았다. 주인은 아무 말없이 다른 자리로 옮기라고 하면서 깨진 맥주컵과 엎질러진 맥주를 치웠다. 그리고 맥주도 다시 갖다 줬다. 너무 미안하긴 했지만, 그냥 주인이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다시 1시간쯤 더 시간을 보내다가 밖으로 나와 슈퍼마켓에서 저녁에 먹을 음식을 샀다. 오늘도 훈제통닭이 있어서 한 마리 사고, 복숭아와 요구르트, 망고주스도 샀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오픈시간인 오후 2시까지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오후 2시가 되어 알베르게 출입문 앞으로 갔더니 ‘14:00H’라고 쓴 글씨 왼쪽 밑에 조그만 글씨로 ‘Touch the Bell’이라고 쓰여 있었다. 왼쪽에 있는 전기스위치처럼 생긴 벨을 눌렀더니 문이 열렸다. 어! 2시에 맞춰 열릴 수 있도록 해놓은 건가? 그 전에도 열렸으려나?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 접수대 옆을 보니 또 다른 안내문이 있었다. “알아서 침대를 정하고 시설들을 이용하고 있어라. 저녁 7시에 오겠다(Come in, take a bed and use the facilities, we come from 19:00 to register).”


내가 침대위치를 정하는 우선순위는 콘센트 위치다. 오늘도 첫번째로 알베르게에 들어왔으니 침대 정하는 것도 내 맘대로였다. 콘센트가 옆에 있어서 좋긴 한데 햇볕이 좀 따가웠다. 하긴 해가 지면 괜찮아 지겠지!


저녁에는 낮에 사다 놓은 훈제통닭과 복숭아, 요구르트, 망고주스 등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통닭이 조금 짜긴 했어도 바게트나 주스와 함께 먹었더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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