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28일째, 소토 데 루이냐에서 카다베도까지

by 이흥재

2022년 10월4일 (화)


어제저녁은 독일인들의 밤이었다. 낮에 누군가 한 사람이 자기가 음식을 만들겠으니 독일인들은 다 모이라는 사발통문 보내는 걸 봤었는데, 7~8명이 모여 함께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고 늦은 시간까지 대화하느라고 시끄러웠다. 그 여운이 남았는지 취침시간인 10시가 지나도록 침실에서도 웃고 떠들어댔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럽인들의 매너는 순전히 교육의 소산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교육 받은 내용들은 비교적 충실히 지키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은 ‘경우(境遇 사리나 도리)’가 없을 때가 많았다. 이곳에서 특이한 것 하나는, 작은 도로에서 큰 도로로 진입하는 구간에는 반드시 ‘STOP’란 글자를 바닥에 써놓았다. 집에서 도로로 바로 진입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어디서나 ‘우선 멈춤’은 아주 잘했다.


그렇지만 대화라는 걸 보면 너무 지나쳤다. 어떨 때는 내가 일기를 쓰거나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도 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큰 소리로 대화를 했다. 물론 급한 얘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리고 둘 셋만 모이면 대화소리가 너무 컸다. 남들은 거의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밤에는 코 고는 사람 때문에 잠을 설쳤다. 두 세 명 정도가 코를 골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한 사람이 심하게 코를 고는 바람에 자다가 여러 번 깼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를 골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한데, 그 사람은 밤부터 아침까지 끊임없이 고를 골았다. 그 정도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한 것은 물론 본인도 목구멍이 몹시 아플 텐데, 한번도 깨지 않고 열심히 코를 골아댔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여전히 6시다. 그 시간에 다른 순례자들도 몇 명 깨긴 했지만, 그들은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 다시 침대로 갔다. 나만 그대로 짐을 챙겨 알베르게를 나왔다.


시골마을에서 머물게 되면 포장도로를 조금만 걷다가 곧바로 숲속으로 카미노가 이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출발한 시간이 6시15분쯤이었는데, 그 시간이면 주위가 아주 깜깜하다. 더구나 숲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걷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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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숲속 길은 아직 물기가 많았다. 그나마 자갈이 있는 구간은 괜찮지만 흙길은 진창이 된다. 낮에는 물웅덩이를 피해가기 쉽지만 어두우면 한계가 있다. 비가 와도 젖지 않았던 등산화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두우니 숲속을 지나는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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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과 포장도로 걷기를 반복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냈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은 대략 8시 반쯤이다. 그래도 7시 반쯤 되면 핸드폰 불빛 없이도 포장도로를 걸을 수 있다.


오늘은 해안가에 가까운 카미노를 걷는데, 멀리 해변이 보일 뿐 카미노는 항상 숲속으로 향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순례자들은 카미노를 벗어나 해변을 보고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날이 밝아지면서 나를 앞서가는 순례자가 나타났다. 어제 알베르게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오늘은 걸은 지 2시간 만에, 그러니까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문을 연 바르를 발견했다.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는 바르였다. 그런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출발한다고? 바르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맥주와 빵을 주문했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시간에 맥주를 마시진 않지만 오늘은 숲속에서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하느라고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 바르까지 걸어온 거리가 11km쯤 됐다. 오늘 걸을 거리가 20km가 채 안되기 때문에 벌써 절반 이상 온 셈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걷던 속도대로 계속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 카다베도(Cadavedo, 아스투리아스어: Cadavéu[공식어])에 가까워지면서 많은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몇몇은 바르로 들어가고 또 다른 순례자들은 계속 걸어갔다. 점심시간이 거의 됐지만 나는 우선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de Cadavedo)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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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낮 12시에 문을 연다고 돼있었지만, 11시 반 전인데도 문을 열어놓고 벽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접수한 후에 샤워하고 빨래까지 했다. 그런데 이 알베르게서는 와이파이가 안된다고 했다. 이런!


점심을 먹기 위해 바르로 갔다. 그런데 바르에서 먹을 건 핀초 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핀초와 맥주만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 한참 동안 바르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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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바르를 나와 슈퍼마켓을 찾아갔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좀 전에 오면서 바르 옆에 조그만 가게가 있는 걸 보긴 했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멀었다. 바르로 다시 가서 슈퍼마켓 위치를 물었더니 가르쳐주기는 하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을 거라고 했다. 문을 다시 여는 오후 4시 지나서 가봐야겠다.


저녁에는 먹을 거리를 찾느라고 마음고생을 좀 했다. 알베르게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휴대폰에 저장해온 동영상을 보다가 저녁 6시쯤 저녁을 먹기 위해 점심을 먹었던 바르로 다시 갔더니 음식은 오후 4시까지만 판다고 했다. 더구나 오후 8시에는 문을 닫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겠냐니까 호텔로 가보라고 했다. 호텔이 어디에 있는데? 자세한 위치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좀 멀긴 해도 마을초입에서 봤던 바르라도 찾아가기로 했다. 거리로는 1km 이상일 것 같았다. 바르 옆에는 가게도 있었으니 뭔가 먹을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바르를 찾아가고 있었는데 얼마 안 가서 낮에는 잠겨있던, 문을 연 가게가 있었다. 어, 여기가 가게였었나? 작은 규모의 가게였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우선 파에야와 동그랑땡 즉석식품을 사고 함께 곁들여 먹을 음료수와 요구르트도 샀다. 사과도 하나 사고 싶었지만, 진열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주인이 말리는 바람에 고를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물건을 다 사 갖고 알베르게로 돌아가기 전에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바르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인스타그램을 업로드 했다. 늦은 시간(한국과는 7시간 시차가 나기 때문에, 저녁 7시면 한국은 밤 2시다)이라 가족들과 카톡은 할 수 없었다.


알베르게에는 다행히 전자레인지는 있어서 즉석식품 2개를 한꺼번에 넣고 돌렸다. 포장지에는 2분이면 된다고 쓰여있었지만, 파에야의 쌀을 좀 더 익혀먹기 위해 3분 동안 돌렸더니 역시 쌀이 잘 익었다. 접시에 파에야와 동그랑땡을 한꺼번에 붓고 섞어 먹었더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식당에 앉아 동영상을 보고 있으니까, 늦은 시간에 순례자 2명이 또 들어왔다. 침대는 만원인데 어쩌려고 그러나? 잠시 지켜봤더니 식당 한쪽에 간이침대가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 잠자리를 잡는 바람에 식당에서 동영상 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저녁 8시쯤 침대로 가서 1시간 정도 더 동영상을 보다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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