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6일 (목)
엊저녁에 내리던 비가 밤새 그쳤지만 아침까지도 날씨는 잔뜩 흐렸다.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를 정도였다. 오늘은 구간거리도 좀 멀고(30km가 넘는다), 날씨까지 좋지 않아서 다음 목적지인 라 카리닷(La Caridad, 공식어: A Caridá)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서 버스 타는 장소는 찾았는데, 거기서 버스를 어떻게 타는 건지,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알베르게 주인이 잠시 들렀길래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그 방법을 물었더니 뭐라고 설명하는데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주인도 답답했는지 비가 오고 있는데도 나를 데리고 버스 타는 곳으로 데려가서, 벽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여주며 다시 설명해주니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곳은 갈리시아 지방의 리바데오(Ribadeo)로 가는 버스와, 반대로 리바데오에서 오비에도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 라 카리닷으로 가려면 리바데오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루아르카에서 출발하는 첫 차는 아침 8시45분에 있었다.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갈 거라서 아주 늑장을 부렸다. 6시에 일어났다가도 다시 잠들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더니 7시20분쯤 됐다. 그동안은 6시에 일어나 바로 출발했기 때문에 다른 순례자들이 언제 일어나서 출발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략 7시 반쯤 일어나서 8시쯤 출발했다.
바깥문을 열어보니 추위를 견딜 정도의 날씨인 것 같아서 8시쯤 알베르게를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정류장(지도에는 버스터미널[Estación Autobuses Luarca]로 나와있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정류장이다)으로 갔다. 그런데 여자도 배낭을 메고 나와있어서 순례자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얘기해보니 루고(Lugo)로 가는 거라고 했다(루고까지는 루아르카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리바데오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날씨도 흐리고 바람도 꽤 불어서 점점 추워졌지만 옷을 더 꺼내 입기가 귀찮아서 추위를 그냥 견디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40분 이상 기다리고 있으니까 리바데오행 버스가 왔다. 이곳의 버스는 대부분 운전기사한테서 티켓을 끊는다. 버스 안에 발권기가 있고 버스기사가 일일이 계산하면서 표를 줬다. 루아르카에서 라 카리닷까지의 버스요금은 3.2유로. 8시45분에 출발해서 9시30분 도착예정이었다.
버스를 타면 언제 어디서든 앞자리를 고수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미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버스는 오비에도에서 오늘 것이기 때문에 앞자리가 비어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도 이른 시간이어서 기대하며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맨 앞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있고 그 옆자리가 비어있어서 얼른 앉았다.
버스는 중간에 3~4차례 정차한 후 10시쯤 라 카리닷에 도착했는데,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La Caridad)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아직은 오픈시간(인터넷에는 11시에 연다고 나와있다)이 아니어서, 근처의 바르로 들어가 핀초와 맥주를 주문해서 먹었다.
30분쯤 바르에 앉아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주변사진을 몇 장 찍고 지도를 보면서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역시 아직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몇 시에 오픈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본 정보가 맞겠거니 하면서 11시까지 동영상을 보면서 기다렸다.
드디어 11시가 조금 지나 옆에 있는 벨을 눌렀더니 문이 열렸다. 여기도 시간을 맞춰놓은 건가? 좀 전에는 벨을 눌러도 열리지 않았었다. 그땐 너무 살짝 열어서 그랬나? 아무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알베르게 안에는 아무도 없고, 탁자에 ‘Sign up 19:30’이라고만 쓰여있었다. 우선 침대를 하나 정하고 옆에 있던 침대커버를 씌운 후에 짐을 정리했다. 오늘은 날씨도 좋지 않고, 버스를 타고 와서 땀도 흘리지 않았으니 샤워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날씨에 수건 말리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알베르게의 가장 큰 단점은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면 되지만, 긴 시간 동안 그것만 보고 있기엔 조금 심심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점심도 먹고 슈퍼마켓에도 들르고 와이파이도 이용할 겸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시내 쪽으로 가다 보니 알베르게(Albergue La Xana)가 또 있었다. 아니, 다른 알베르게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무심코 지나쳤다가 이제 보게 된 거였다. 오픈시간은 오후 2시(인터넷에는 11시라고 나와있다)였다. 가능하면 이곳으로 옮겨야지 생각하면서 슈퍼마켓에 들어 장을 보고 바르로 가서 점심도 먹었다.
와이파이를 하기 위해 바르에 늦게까지 않아있으니 눈치가 좀 보이긴 했지만 달리 갈 곳이 없어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다고 나가라고 하진 않으니까.
오후 2시가 되어 좀 전에 봤던 ‘사나’ 알베르게로 갔더니 문이 열려있었다. 이곳은 바르를 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접수하려고 했더니 예약으로 만원이라 2층 침대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했다(그곳이 내가 묵은 알베르게니,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2층 침대에서 잔 적이 몇 번 있는데 오르내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올라가고 싶지 않아 그 알베르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공립알베르게로 돌아갔는데, 와이파이가 되지 않더라도 저녁거리까지 사왔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면서 하루를 버텼다.
저녁에는 낮에 사나 놓은 즉석식품을 데워 먹었다. 파에야는 늘 먹던 거라서 아는 맛이었는데, 처음 산 야채볶음은 좀 시큼한 맛이었다.
안내문에 써있는 대로 저녁 7시쯤 직원이 접수 받으러 왔는데, 낯이 익었다. 좀 전에 ‘사나’ 알베르게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건가? 아니면, 이곳은 관리만 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점심이나 저녁을 ‘사나’ 알베르게에 딸린 바르에서 주문해 먹을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는데, 이제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리고 7유로를 내고 접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