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31일째, 라 카리닷에서 갈리시아 지방 리바데오

by 이흥재

2022년 10월7일 (금)


어제 밤은 비교적 조용하게 보냈다. 낮잠을 자면서도 코를 골던 순례자가 밤에는 조용했다.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배낭을 싸서 곧바로 알베르게를 나왔다. 비가 온 뒤라서 추워질 줄 알았는데, 전보다 더 추위지진 않았다. 평상시 옷차림으로 걷는데도 땀이 많이 날 정도였다.


해가 뜨기 전까지는 되도록이면 포장도로를 따라 걷기고 마음을 정했다. 다행히 오늘 코스는 포장도로를 벗어나는 숲길도 있지만 이내 다시 포장도로와 만나도록 카미노가 나있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아예 포장도로만 쭉 걸었다.


2시간 남짓 걸어서 해안가에 있는 타피아(Tapia de Casariego) 마을에 도착했는데, 어둠이 걷히는가 했더니 그 자리를 안개가 차지했다. 바닷가를 지나는데 파도소리는 요란했지만 안개 때문에 해안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마주하는 바다는 아니었어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안개낀 해변.jpg

그래도 다행히 아침 일찍 문을 연 카페(Café Moderno)를 만났다. 타피아가 큰 도시도 아닌데(3,683명[2021]) 이렇게 일찍 문을 연 카페가 있다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어떻든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토르티야와 맥주를 먹고 나니 다시 힘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이제 땀도 많이 식었다. 요즘 이상하게도 아침 일찍 땀이 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다. 걷는 강도는 비슷한데 그 원인은 아직 모르겠다.

타피아 카페.jpg

타피아를 지나면서부터는 평지가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마을이든 숲이든 오르막과 내리막이 아주 심한 길들이었는데, 앞이 탁 트이니 가슴도 시원했다. 하지만 안개가 잔뜩 끼어있어서 멀리까지 볼 수 없으니 이 또한 아쉬움이 남았다.

안개낀 평지길.jpg

오늘은 2주 동안의 아스투리아스 지방 횡단을 마치고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가는 첫날이었다. 갈리시아 지방이 가까워지니까, 아스투리아스의 풍경조차 조금씩 색다른 것 같았다. 오레오도 지금까지와는 모습이 다르고, 돌로 지은 집들도 많아졌다.

오레오.jpg

그렇게 걸어서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드디어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가는 다리(Ponte dos Santos)를 건넜다. 그런데 이 다리를 건너는 게 엄청 무서웠다. 다리가장자리에 좁은 보행로가 있는데, 왼쪽에 보호난간을 설치해놓긴 했지만 사람의 힘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약해 보였다. 게다가 큰 차가 다리를 지나가면 보행로가 흔들이는 것 같았다. 밑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데, 조금의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는 사람은 도저히 건너가기 힘들 정도였다. 다리 길이가 600m라는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스투리아스지방 마지막 모습.jpg
산토스 다리.jpg

건너가는 도중에 사람 둘이 피하기조차 좁은 공간에서 마주 오는 자전거 탄 사람들을 만났다. 자전거만 지나가도 꽉 찰 정도의 너비였는데, 그래도 그들이 난간 쪽으로 비켜줘서 간신히 지나칠 수 있었다. 어떻든 사람들이 통행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설치한 보행로이겠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진땀을 흘리면서 다리를 건넜더니 도로 맞은편으로 ‘Comunidad de Galicia, Provincia de Lugo’란 간판이 보였다. 이제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했다. 제일 가까운 알베르게는 길 건너편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Ribadeo)지만, 시내에서 너무 멀고 편의시설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알베르게(Albergue Ribadeo A Ponte)를 찾아갔다. 카미노에서도 가깝고 가격(13유로)도 괜찮은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찾아간 알베르게 문은 잠겨있었다. 전화해봤지만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리바데오 전경.jpg
갈리시아 이정표.jpg

이럴 때는 빨리 대안을 찾아야 했다. 카미노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오늘 묵은 알베르게(Albergue Río Eo)를 찾아갔다. 꼬불꼬불 나있는 길을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는데, 이 알베르게 역시 문이 닫혀있었다.


그런데 마침 직원이 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낮 12시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였고, 그때가 12시 조금 전이었다. 직원은 방탈출 게임처럼 숨겨진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침대를 배정해줬다. 그리고 샤워한 후에 빨래까지 해서 건조기에 넣고(3유로) 점심도 먹고 저녁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슈퍼마켓을 물어 물어 찾아가서 점심과 저녁거리를 12유로 정도 주고 사서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에 건조기로 가봤더니 하나도 마르지 않았다. 분명히 건조기가 돌아가는 걸 봤는데, 무슨 일이지?


조금 있다가 청소하는 아줌마가 왔길래 건조기가 왜 안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손세탁 한 걸 넣으면 안되고 세탁기로 세탁한 후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 설명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손빨래 한 옷을 다시 세탁기에 돌렸다. 그렇게 해서 3유로면 해결될 것을 9유로나 쓰게 됐다. 아주 비싼 빨래였다.


조금 전에는 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노트북이 먹통이 됐다. 무슨 일이지? 앞으로 일기는 어떻게 쓰고, 사진을 어떻게 정리하지? 빨리 컴퓨터 수리하는 곳을 찾아야 할 텐데. 그렇게 상심하고 있었는데,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해봤더니 작동이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나 하나가 아슬아슬한 하루였다.


이 알베르게에는 순례자가 2~3명 밖에 안 온 것 같았다. 카미노에서 멀어서 그런지 비싸서(15유로) 그런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알베르게였다.


저녁식사는 또 훈제통닭이었다. 그런데 전에 먹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포장모양도 달랐지만, 지금까지는 전자레인지에 5분만 돌리라고 한데 비해 이번에는 8~10분 돌리라고 해서 8분만 돌렸더니 역시 약간 설익은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완전히 익힌 상태에서 포장한 것 같고, 이번에는 덜 익힌 상태로 포장한 것 같았다.


빨래는 세탁기까지 돌린 후에 건조기에 넣었지만 역시 마르지 않아서 전부 침대 주위에 걸어놓고 잠을 잤다. 다행히 순례자들이 거의 오지 않아서 침대가 남아돌았고 그래서 빨래 너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수건과 양말은 다음날 아침까지 마르지 않아서 배낭에 매달고 걸었다).

리바데오 풍경.jpg
리바데오 풍경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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