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8일 (토)
오늘은 조금 먼 거리를 가야 해서 평소보다 15분 일찍 일어났다. 아니, 20분 일찍 일어난 셈이었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번 일어났었는데, 새벽에 다시 가야 했지만 참고 있다가 5시40분에 일어나고 말았다. 화장실엘 다녀와서 세수하는 동안 5시45분에 맞춰놨던 알람에 울렸다.
알베르게에 함께 묵은 순례자가 없으니 아침에 짐을 싸는 데도 신경이 덜 쓰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 불빛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잠 자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오늘도 모든 짐을 들고 현관으로 나가서 배낭을 꾸렸다.
리바데오는 도시(9,871명[2021])여서 그런지 새벽부터 밝았다. 아니, 밤새도록 밝았다. 그러니까 걷기엔 아주 편했다. 알베르게가 카미노와는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 카미노를 만날 수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니 캄캄한 숲속 길을 가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아예 없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도에 숲으로 표시된 곳도 유칼립투스만 무성하고 길도 아주 넓었다. 그러니까 길이 아예 안 보일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에는 갈리시아 지방에 가까워지면서 안개가 많아 걱정했었는데, 오늘은 안개가 없었다. 아마도 어제는 바닷가여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날씨는 흐린데 걷는 내내 땀이 많이 났다. 기온이 더 내려가는 것 같은데도 왜 땀이 많이 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오늘도 걸으면서 여러 마을을 지났지만 바르를 만나지 못했다. 이러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로우렌사(Lourenzá)까지 가는 동안 한번도 쉴 수 없나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5시간 만에 산 후스토(San Xusto) 마을에서 첫 바르를 만났다. 곤단(Gondán)에서도 알베르게가 있던 마을이라서 바르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고, 멀리 마을이 보이면 저곳에는 바르가 있겠지 생각하는 순간 카미노는 다른 쪽으로 비켜갔다(대부분이 농촌마을이라서 바르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마을 지나는 길이 오르막이 심해서 숨이 턱턱 막혔다. 한참 올라가다가 이제 오르막이 끝났나 싶으면 방향을 돌려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면서 확연히 달라진 게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카미노 표지석이다. 크기도 하지만 일일이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거리를 표시해 놓았다. M 단위까지 표시(km 163,746)해 놨는데, 어떻게 측정했는지 늘 궁금했다.
또 다른 하나는 오레오다. 규모와 모양이 다른 지방과는 아주 달랐다. 아스투리아스 지방은 정형화돼 있으면서 정사각형에 가깝고 아주 큰데 비해 이곳은 직사각형이면서 아주 높은 곳에 설치해놓았다. 그리고 모양이나 만든 재료도 벽돌이나 돌 등으로 아주 다양했다.
6시간 남짓 걸어서 로우렌사 초입에 도착했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시설은 축구장이었다. 지금까지 오면서 스타디움까지 설치된 축구장은 처음 봤다. 이곳이 그렇게 큰 마을도 아닌데 그만큼 투자했다는 게 대단했다.
이제 지도를 보면서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했다. 인터넷에 보면 여기에는 5곳의 알베르게가 있는데, 첫번째 알베르게(Albergue Savior)는 시내랑 너무 먼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다. 두번째 있는 알베르게(Albergue Triskel)는 기부제인데, 오후 2시에 오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그래서 그 알베르게 입구에 배낭을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바르에 들어가 점심을 먹겠다고 했더니, 지금은 음식을 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가 알려준 식당으로 갔더니 뚱뚱한 주인 아줌마가 있었다. 점심을 먹겠다고 했더니 메뉴판을 보여주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그 중 포요(pollo, 닭고기)란 단어만 보고 그 음식을 주문했다. 나중에 나온 걸 보니 닭 날개를 굽고 감자튀김을 곁들인 거였다. 맛은 괜찮았다. 맥주와 함께 먹다가 3조각을 남겨 싸 달라고 해서 가져왔다.
오후 2시쯤 되어 알베르게로 다시 갔더니 다른 순례자들이 몇몇 와있었다. 조금 있다가 다리가 불편한 주인이 왔는데, 알고 보니 예약한 순례자들로 만실이어서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됐다. 어떡하지? 곧바로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 나섰는데, 한곳(Albergue Castelos Lourenzá)은 문을 닫은 것 같았고 그 옆에 있는 알베르게(Albergue-Pensión O Pedregal)는 오후 2시에 문을 연다는 안내문을 붙여놓긴 했지만 문은 잠겨있었다. 이 알베르게도 문을 닫은 건가?
이제 남은 건 공립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Lourenzá) 뿐이었다. 이곳의 5개 알베르게 중 가장 멀리 있어서 가지 않으려고 했던 곳인데, 이젠 어쩔 수 없게 됐다.
조금 늦은 시간에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직원이 없었다. 이 알베르게도 다른 공립 알베르게들과 비슷하게, 직원 없이 순례자들이 먼저 침대를 정하고 저녁에 와서 접수 받는 시스템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빨래했기 때문에 저녁 때까지 마를지 모르겠다. 이 알베르게에는 세탁기나 건조기, 탈수기가 없어서 오직 바람에 맡겨서 말려야 했다(저녁에 확인해보니 수건과 양말 말고는 거의 말랐다. 양말과 수건은 내일 배낭에 매달고 가면서 말려야 할 곳 같다).
이 알베르게는 또한 와이파이도 안 됐다. 할 수 없이 바르로 가서 급한 카톡을 보내고 내일 묵을 알베르게 정보도 찾아서 예약도 했다. 내일은 걷는 거리가 오늘에 비해 짧은 데다 예약까지 했으니까 조금 느긋하게 걸어도 될 것 같다.
저녁에는 즉석식품을 데워먹었다.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저녁을 해먹기 때문에 주방은 항상 붐빈다. 그래도 그 틈에서 식사 한번 해결하는 건 이제 큰 문제가 아니다.
저녁 7시에 알베르게 직원이 와서 뒤늦은 접수를 받았다. 물론 그 전에 도착한 순서대로 침대를 차지한 후였다. 숙박비는 8유로.
밤 9시가 지났는데도 주방 쪽이 시끄러웠다.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단체로 저녁을 해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난리도 아니었다. 일찍 잠든 순례자들은 그 시간이면 이미 꿈나라에 가 있을 텐데, 역시 남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나도 9시쯤 자려고 했는데, 그들이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잠들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