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33일째, 로우렌사에서 아바딘까지

by 이흥재

2022년 10월9일 (일)


오늘도 6시에 일어나서 짐을 챙겨 1층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부지런한 여자 순례자가 벌써 아침까지 챙겨먹고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난 거지? 나는 요즘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내가 알베르게를 첫번째로 나서게 됐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카미노가 곧바로 산으로 오르는 오르막이었다. 우회하는 포장도로도 있겠지만 오늘은 카미노 표시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리막길은 수월한 편이다.


오르막길도 처음에는 잘 올라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진다. 그 상황이 매번 반복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힘든 걸 참고 한발자국씩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2시간 걸어서 몬도녜도(Mondoñedo)에 도착했는데, 문을 연 바르가 없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간 해도 대성당(Catedral basílica de la Virgen de la Asunción de Mondoñedo)까지 있는 마을이라서 문을 연 바르가 하나쯤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일요일이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몬도녜도 대성당.jpg

대성당 앞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지도도 말썽이었다. 가는 방향을 알려줘야 하는데, 정북방향만 가리키고 움직이질 않으니까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인가 왔다 갔다 하다가 가까스로 방향을 잡고 걸을 수 있었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들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늘 새롭다. 오늘은 산등성이에 일렬로 설치된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었다. 좀 멀리 떨어져있긴 해도 바람이 부는 대로 열심히 날개를 돌리고 있었다.

풍력발전기.jpg

4시간 반쯤 걸었을 때 조금 떨어져 있는 주유소 옆에 버스들이 여럿 정차해 있고, 그곳에 카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쪽으로 가볼까 망설이다가 조금 먼 듯해서 그냥 지나쳤는데, 걷다 보니 카미노 쪽으로도 길이 연결돼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페로 갔어도 되는 거였는데,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휴식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주유소.jpg

5시간쯤 걸었을 무렵 자전거 순례자들을 만났다. 길도 좋지 않고 오르막도 심한데 자전거 타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힘들었다. 서로 열심히 하자고 응원하면서 자전거 순례자들을 먼저 보냈다.

자전거탄 사람들.jpg

12시쯤에 이곳이 오늘의 목적지구나 생각하면서 들어선 곳은 곤탄(Gontán) 마을이었다. 그런데 마을이 휑했다. 여기도 일요일이어서 그런가! 길가에는 자동차축제가 있었다는 듯이 Festa do Motor’란 풍선이 붙어있었고 천막도 설치했던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마셨던 맥주와 음료수 병들이 거리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곤탄.jpg

곤탄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아바딘(Abadín) 마을로 이어지는 길도 심한 오르막이었다. 조금 올라가니 아바딘 읍사무소(Concello de Abadín) 건물이 보였다. 그런데 건물이 꽤 컸다. 지금까지 봤던 공공건물들과는 규모가 달랐다. 이곳이 이렇게 큰 마을이었나(2,297명[2021])?

아바딘 읍사무소.jpg

쉬지도 못하고 6시간 동안 걸어서 드디어 아바딘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오늘 묵을 알베르게(Albergue Goás)가 보였다. 그런데 지도상으로는 더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래서 먼저 맞은편에 있는 바르로 갔다.


맥주와 엠파나다(empanada)를 주문했는데, 맥주를 큰 잔으로 달라고 했더니 500cc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엠파나다는 너무 딱딱해서 칼로 자르기조차 힘들었고, 안에 넣은 것도 참치종류인 것 같아서 조금만 먹고 말았다.


바르를 나와서 알베르게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지도를 보면 분명히 400m 떨어진 곳으로 나오지만 바로 앞에 알베르게가 있었다(지도에는 casa Goás라고 나왔다). 그곳으로 갔더니 직원이 나와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여기가 알베르게 맞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오늘도 역시 이 알베르게의 첫번째 순례자였다. 2층으로 올라가서 맘에 드는 침대를 차지했다.


샤워하고 빨래까지 마친 다음 1층으로 다시 내려가 직원에게 슈퍼마켓 위치를 물었더니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전부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사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하면 된다고 했다.


직원의 안내로 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승강기라서 반대쪽 문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아있었더니 메뉴판도 주지 않고 식당직원이 따라오라고 했다. 주방으로 데려가서 하나씩 보여주며 뭘 먹을 건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래서 에피타이저는 갈리시아 수프, 메인 요리는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그런데 함께 나온 레드와인을 3분의2병쯤 마셨더니 너무 취한 것 같았다.

에피타이저.jpg
돼지갈비.jpg
디저트.jpg

점심을 다 먹고 침대로 돌아와 한참 동안 누워있다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고종사촌과 영상통화를 했다. 그동안 카톡으로 가끔 소식을 주고 받았지만 얼굴을 대하는 것은 20년 만이었다. 지난 2003년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잠깐 만난 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당초엔 올 봄에 한국에 오겠다고 해서 내가 여행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었는데, 여행일정이 가을로 변경되면서 내가 스페인으로 오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됐었다. 그래도 서로 건강한 모습을 마주하니 기분은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 한국방문이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바쁜 일정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통화를 끝내고 다시 잠을 잤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숙취가 남아있었다. 속도 울렁거렸다.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어야 할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오늘 저녁을 먹지 않으면 내일 하루 종일 힘들 테니까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데 걱정이 됐다. 저녁에는 당연히 알코올은 사절이다.


저녁 6시 반쯤 일어나서 노트북을 챙겨 일기를 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는데, 일기를 쓰는 동안에도 계속 울렁거려서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만약 저녁을 먹지 않아도 저녁 때는 견딜 수 있겠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걸어야 해서 다음날 하루 종일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었다.


다행히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일기를 쓰는 1시간 반 동안 속이 좀 나아진 듯해서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식당으로 갔다. 늦은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아니, 이곳은 지금이 피크타임이었다. 그래도 빈자리가 하나 있어서 그곳에 앉았다.

식당.jpg

식당종업원과 눈인사는 했지만, 손님이 너무 많은 탓에 너무 바빠서 30분이 지나고서야 주문을 받았다. 저녁도 역시 코스요리였다. 에피타이저는 몇 가지 중에서 야채수프를 선택했다.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였다.


메인 요리는 비프와 치킨, 그리고 피시 중에서 고르라고 하길래 비프를 골랐는데, 퍽퍽살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고기에 붙어있는 지방을 극도로 싫어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퍽퍽하게 요리할 리가 없다. 이건 꼭 장조림 고기 같다. 처음엔 비프라고 하길래 스테이크인줄 알고 주문한 건데, 착각이었다. 게다가 함께 나온 감자튀김도 너무 짰다. 이 정도 식감과 간이면 좀 전에 먹었던 야채수프와 함께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는데, 수프는 이미 치운 후였다.


낮에 와인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저녁에는 음료로 물을 달라고 했다. 지난번 프랑스길에서도 몇 번 이런 종류의 음식을 먹은 적이 있지만 와인 대신 물을 달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낮에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힘들었기 때문에 저녁에도 마실 수는 없었다.


디저트로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푸딩 등 몇 가지를 추천했는데,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했더니 또 뭐라고 했다. 아마도 떠 먹는 거? 아니면 들고 먹는 거? 그런 걸 물어봤을 테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아무거나 달라고 했더니 초콜릿이 조금 들어간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줬다. 그런데 제대로 떠지질 않아서 숟가락으로 먹기엔 조금 불편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친 시간은 9시 반이 지나서였다. 요금은 점심 때와 같은 13유로.


침대로 돌아오니 10시가 거의 다됐다. 그래도 양치부터 한 후에 짐을 정리하고 10시가 지나도록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잤다. 그래도 주위에서 시끄럽게 하는 게 없으니 잠자리가 아주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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