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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Oct 22. 2016

난 오늘 퇴사했다

6번째 퇴사, 날아갈 것 같은 기분

목요일, 퇴사하던 날 그 홀가분한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처음도 아닌데 벌써 정규, 비정규 도합 6번째 퇴사인데도 유난히 자유의 기쁨을 느꼈고 당장 아침에 만원 버스에 몸을 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D데이를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졌다. 이번 회사는 규모가 크고 유난히 정해진 프로세스가 많았고 오래 다닌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정체된 분위기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예민한 감성의 사람으로서 출퇴근의 압박에 쫓기며, 권위적인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일에 열중하면서 마음속의 외침을 억제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일일 테지. 


마지막 날이라 근처에서 팀원들과 치맥을 하기로 하고 다른 여직원 2명과 먼저 나왔다. 퇴근은 6시인데 정리하고 6시 반에 나가자는 윗 분의 말에 센스 없다고 우린 먼저 가있겠다는 동료분 덕에. 가는 길에 동료분이 나지막이 '나도 그만두고 싶다, 근데 이 나이에 받아주는 데도 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한 번도 그런 속내를 표현한 적 없는 사이었기에 신선했고 그동안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외롭게 고민했던 것들에 좀 위안도 됐다.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이 누구를 위해 좋을까?


이 회사 면접을 볼 때도 그랬고, 몇 달 전 면접 봤던 모 대기업의 경우도 그랬다. 잦은 이직과 프리랜서 경력은 늘 화두가 되곤 했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답변을 준비해 가곤 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보이는지 알기에 나 역시 콤플렉스처럼 느껴왔다. 처음에는 월급이 밀리거나 회사의 사정으로 일찍 그만두게 되었지만 애초에 경력을 쌓아서 프리랜서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근속기간은 큰 의미가 없었다. 


회사에 대한 환상이 깨졌던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인턴을 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대기업 해외 의류회사의 vmd일이었는데 본사에서 보내오는 매뉴얼대로 매장 디스플레이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당장 하는 일이 단순한 건 둘째치고 팀장이나 5,6년 차 선배들의 모습은 회사가 좋다고 말하지만 영혼이 없어 보였다. 또한 정해진 매뉴얼대로 해야 하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특별히 능력면에서 남는 것도 없을 것 같고, 아직 파릇했던 내게 회사의 경직된 분위기와 진심 없는 대화들은 참 불편했었다. 그때, 그만둔 후에는 소용없는 회사의 이름값보다는 나 혼자서도 일할 수 있도록 능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인턴이 끝나고 바로 취업하지 않고 유럽여행을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기가 한 번의 터닝포인트였다. 그 후 웹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바꿔 경험을 쌓고 회사생활과 프리랜서 경험을 오가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제대로 못해서 도망을 가거나 싸우고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내가 할 일은 마무리를 잘 하고 나왔다. '전에 다닌 회사는 얼마나 다녔어?' 이 질문은 아주 흔하게 오고 가는 질문이고 내가 꺼리는 질문이기도 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번거롭고 이런 내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적응을 잘 못하는 거 아니야?' 라거나 '엄청 힘들었나 봐'라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면접 때는 들어와서 조금만 힘들어도 바로 나갈 사람처럼 보여서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반응 속에서 나 스스로도 나한테 문제가 있나 하고 고민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는 것이 정말 나에게도 나쁜 일일까?

회사(주로 큰 회사)에서 꺼리는 이유는 입사 후 이것저것 숙지할 것들이 많고 회사에 적합한 사람으로 적응시키기 위한 룰도 많아서 사람이 자주 바뀌면 번거롭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직이 잦은 사람은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컨트롤이 쉽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바꿔 생각하면 너무 튀지 않고 무던하게 일하며 어떤 문제가 있어도 그만두지 않고 잘 적응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에 비하면 모순된 느낌이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잘 적응한 사람이 창의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번에 느낀 것은 사람이 너무 바뀌지 않아도 회사 분위기는 경직되고 정체된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오래 다닌 사람들은 무언가 바뀌는 것을 꺼리고 하던 대로 하기를 바란다. 왜 이런 것까지 시킬까라는 생각이 드는 '회사를 위한 자기계발'도 사명감을 가지고 개인 시간까지 들여서 열심히 한다. 그 안에서 나는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고립감을 느꼈다.

 

내가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한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다니면서도 회사를 잘 이용하고 자신을 잃지 않는 현명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때론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 경험이었다. 



자유로운 선택의 행복


내 인생에서 이렇게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결정했던 적은 처음이다. 올해부터 독립해 혼자 살고 있어 부모님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 이렇게 다른 느낌인 줄은 몰랐다. 독립하기 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일을 할 때도 늦잠을 자거나 게으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경 쓰이고 부모님의 안쓰러워하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집에 얹혀사는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으리라. 작지만 나 혼자만의 공간이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정해진 시간에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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