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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Oct 08. 2016

퇴사 D-2주

윗사람과의 커피 한 잔. 

1월에 입사 후 9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애초에 간섭하고 받는 것도 싫어하고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만드는 작업을 좋아했던 나에게 규모 있는 IT기업의 디자이너 일은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프로세스 하나하나 매뉴얼로 되어 있고, 쪽지 하나 보내는 일도 디테일하게 양식이 정해져 있는 회사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으로는 있는 것이 참 어려워 보였다. 이 회사에 7년째 근무 중인 윗 분(팀장은 아니지만 디자인 컨펌을 해주던 분)과 퇴사를 결정한 후 커피 한 잔을 하는데, 따로 대화를 나눠본 것은 처음이었다. 워낙 개인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절간 같은 분위기, 회의 시간에도 팀장만 이야기하고 팀원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팀원들 대부분 5년 이상 장기 근무한 사람들이었고 고착화된 프로세스에 불만을 느끼지도 않는 것 같아 말할 사람이 없어 이질감도 느껴왔다. 


"바로 일은 해? "

"좀 쉬다가 프리랜서로 일해도 돼요"

"일은 쉬지 말고 계속해야 돼"

"좀 쉬어도 돼요~ 쉰다고 큰 일 나진 않아요"

"아, 그래? 나는 쉬어본 적이 없어서. 애도 있어서 쉬면 안 돼"


"결혼은 안 해? 뭐 이미 많이 듣겠지만"

"결혼할 나이가 됐으니 결혼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저는 없어서요"

"그래, 즐겨~" 


"여행은 언제 갈려고?"

"아마 내년 초쯤?"

"같이 갈 사람은 있어?"

"음, 아직 모르지만, 전 혼자도 많이 다녔어요"

"그래? 나는 전에 한 번 혼자 여수에 갔었는데 너무 외롭던데. "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한 대화가 오고 갔다. 일, 결혼, 여행에 대해서 전형적인 절차를 밟고 한 회사에서 오래 다닌 분이어서 나와는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순간은 늘 그 회사 사람들과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뭐가 이상한 지 모르다가 내 눈에 불합리한 점, 내 창의력을 갉아먹는 제약들을 느낄 때, 그러면서 기존 사람들과 더 이상 공감할 수 없어질 때 외로움을 느끼고 그곳을 나왔다. 회사의 이상한 점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더 이상 그곳에 속해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나 혼자 다른 곳에 서 있는 느낌. 


늘 나의 관심사였던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수단'들을 만들어 놓고, 내년 초에 집 계약이 끝날 때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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