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는데 검정 앞치마를 입은 한 무리의 여자들이 어질러진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서는 빨리 돌아가는 화면 속에서 휘리릭 휘리릭 이리저리 오가더니 집안은 어느새 말끔해졌다.
'어머? 저런 일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렇게 첫 기억은 짧게 지나갔다.
그 무렵의 나는 좋아하는 바느질을 업으로 삼아 패브릭 소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생인 동안은 일을 하더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하자는 나의 결정이었고 사이트는 제법 괜찮게 운영이 되었었다.
작은 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 되던 무렵 '이제부터 나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 속에서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글로 만나고 소통하는 일이 좀 지겹다'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나이 앞자리가 5에 가까워질수록 노안이 왔는지 레이스 앞, 뒤 구분하려면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었고 손끝의 야무짐도 슬슬 무뎌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바느질은 일이 아니라 취미생활이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작정 동네 여성인력개발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프로그램들을 탐색하게 되었다.
60여 가지의 강좌가 있었지만 '음식 만드는 거? 아우 싫어' 그래서 10여 개 정리.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자격증 과정? 아우 못해 못해' 또 열몇 개쯤 탈락.
'남의 집 애들하고 지지고 볶는 프로그램? 안돼 안돼' 그렇게 솎아내니 남은 건 달랑 세 가지.
정리수납전문가, 돌 드레스 만들기, 옷 수선
'아~ 그때 그 검정앞치마 입은 사람들이 정리수납전문가구나? 그럼 일단 이거부터 배워보고 다음 것도 차례대로 배워봐야겠네'
두근두근 정리수납전문가 2급 첫 시간.
정말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으니 얼마나 설레고 좀 긴장도 되던지.
그렇게 정리수납 신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쯤의 나는 20 몇 년차 주부였는데도 배우면 배울수록 '어머나 어머나'의 연속이었다.
그 정점은 이불 개기 시간.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할머니가 그랬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넓은 이불장에 얇고 넓게 이불을 개어 두었었다.
그런데 그 이불장을 툭 반으로 나누어 절반 폭으로 좁고 통통하게 갠다니..
이건 거의 '유레카 ~'를 외치며 뛰어나갈 센세이셔널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왜냐하면 넓고 얇게 갠 이불은 꺼낼 때마다 위, 아래에서 같이 딸려 나오는 통에 사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이 사람은 거의 천재가 아닐까?
나는 이미 정리수납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고 연이어 1급 과정, 강사 과정까지 일사천리로 수료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정리 길잡이가 되어 정리의 늪에 빠져 힘들어 하시는 고객님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