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현장은 예상의 다섯 배쯤은 충분히 뛰어넘었다. 방바닥, TV위, 펼쳐진 건조대 위,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아이들 옷이 올려져 있어 온 집이 거대한 옷 무덤 같았다. 정리수납 봉사를 다니다 보면 만만하고 쉬운 집은 거의 없는데 이번엔 여자아이 옷들과의 전쟁이다.
형편이 어려운 집이라 주위에서 여자아이 옷이 생기면 무조건 가져다주었던 모양인데 엄마가 다소 판단력이 떨어지다 보니 우리 집 아이들이 입을 만한 건지 아닌지 구분 없이 그저 쌓아두어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집안에는 자리를 펴고 분류할 변변한 공간도 없어서 집 앞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11월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분류를 시작했다. 작업하다 보니 이 집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아기 옷부터 아직은 몇 년은 더 자라야 입을 수 있는 옷까지 버려야 할 옷들도 엄청나게 나왔다.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늘 그렇듯 정리가 끝난 저녁엔 아침에는 보이지 않던 방바닥이 훤히 드러난다.
밖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방바닥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얼마나 많이 좋아하는지 차가운 길바닥에서의 수고는 어느새 잊혔다.
이번 작업은 냄새와 바퀴벌레가 복병이다.
아침에 현관문을 여는 순간 서울역 노숙자들에게서 날 법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고 물건을 만질 때마다 바닥에 숨어있던 바퀴벌레들이 출발 신호 떨어진 달리기 선수들 마냥 튀어나왔다. 너무 놀랐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면 거의 혀를 깨무는 노력이 필요했다.
엄마와 중학생 아들 둘이 사는 집이었는데 살림에 서툰 엄마는 죄인처럼 조심조심 우리의 작업을 돕고 있었다. 작업이 끝나고 말끔해졌을 때쯤 학교에서 아들이 돌아왔다. 분명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느낌만으로는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 같아 보였다.
왜소하고 작은 그 아이는 천천히 걸어와 싱크대 문을 조심스레 살짝 열어보고 살짝 닫고, 그 옆 칸을 또 살짝 열어보고 살짝 닫고,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온 집을 다니며 열고 닫고 탐색했다.
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열고 닫는 행동만 반복했지만 아이의 등 뒤에서 나는 웃고 있는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있는 집의 정리수납 봉사가 어느 사례들보다 보람 있다.
단 하루의 봉사로 그 집안에 천지개벽할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가 180도 바뀌는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대개 그 엄마들은 지적으로 다소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 변화가 생기기도 쉽지 않다.
다만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깨끗했던 그날의 경험을 부디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다.
방바닥은 원래 훤히 드러나 보여야 되는 것이고 물건은 제 자리에 착착 들어가 있어야 된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 그때를 생각해 내고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