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뒷골 땡기는 그녀
- 정리하며 만난 사람들
시작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인사 잘하고 들어와서 각자 작업 전 사진을 찍고 물건을 꺼내서 분류하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고부터 고객이 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액세서리 상자라고 했다. 우리는 일 하다 말고 다 같이 찾느라 갑자기 난리통이 되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찾는 물건은 나오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냉랭해졌다.
팀장과 고객은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경찰을 부르기로 합의가 되었다. 경찰 두 명이 와서 상황을 묻는데 고객의 대답을 듣고 나는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질 뻔했다.
“물건이 대략 얼마 정도로 추산이 될까요?”
“그래도 한 사십만 원은 넘을 껄요?”
‘사십만 원? 사십만 원? 사십만 원 이랜다. 사백도 사천도 아니고 사십만 원’
서초동에 제법 형편이 괜찮아 보이는 집이었고 하도 사색이 돼서 난리를 쳐대길래 나는 내심 ‘최소 천만 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 여자 도대체 우릴 뭘로 본거야?’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화가 치밀건 말건 나는 40 몇 년 평생 처음으로 경찰 앞에서 줄지어 서서 가방을 보여주고 주머니를 털어 보여주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당연히 우리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잠깐만요!!" 하더니 달려가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데 바로 그 물건이었다.
아직 안방화장실까지는 작업 진도가 나가지 않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혹시나 싶어서 가보니 변기 옆 아래에 얌전히 놓여 있더란다. 아마도 고객이 잘 숨겨둔답시고 그랬던 모양이다.
연이어 아침에 찍었던 작업 전 사진을 찾아보니 웬수 같은 그 물건은 아침부터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허탈한 해프닝을 끝내고 돌아가는 경찰들에게 고객은 코가 땅에 닿도록 사과하며 미안해하면서도 정작 우리에게는 별 얘기가 없었다.
팀장의 옆구리를 찔러 "우리한테도 사과하라고 해요" 하고서야 겨우 억지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작업은 마저 잘 마무리하고 돌아왔으니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린 정말 멋진 여자들이다.
작업이 끝난 저녁 근처 맥줏집에 둘러앉아 시원한 맥주에 고객을 안주 삼아 한참을 떠들고 나니 낮에 쌓인 울화는 어느 만큼 털어내 졌고 지금은 ‘라테는~’의 소재로 가끔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나 혼자서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아마 그 모멸감, 수치심에 일찌감치 일을 때려치웠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고도 9년을 더 일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아마도 ‘우리’가 하는 일이라서였을 것이다.
한 잔 술과 함께 그날의 불쾌를 N분의 1로 나눠가지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으로 쪼개져서 덜 아프고 덜 속상하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내게 모멸감을 줬던 당신!
지금은 좀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