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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경 Dec 30. 2024

너 무슨 일 하는지 안다

- 정리하며 만난 사람들

정리수납전문가가 되어 열심히 일하던 초반 한 두 해쯤 우리 엄마는 “도대체 니가 남에 집에 가서 뭔 일을 한다는 거야?” 하시며 내가 하는 일을 궁금해하셨다. 엄마 기준에서는 남의 집 가서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청소, 빨래 정도만 생각이 되시는데 그건 아니라며 뭘 정리해 준다는데 도통 이해가 가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탑 시크릿이라도 풀어낸 거 마냥 개운한 얼굴로 빙그레 웃음까지 지으시며

“나 이제 너 무슨 일 하는지 안다”

“어떻게 알았대?”

“테레비에 나오더라 여자들이 막 집 정리하는 거”


미디어의 위대함 이란. 내가 그리 열심히 설명했건만 TV화면으로 한방에 설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시청각교육을 하는 건가? 우리 엄마가 알았으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고 봐야겠지?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나의 지인들은 “너 하는 일도 타격이 크겠다. 사람들이 낯선 사람 안 들이려고 할 거 아냐?” 하며 염려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매일 아침에 눈 뜨면 집을 나섰다가 해지면 돌아오는 생활일 때는 집 상태가 조금 신경이 쓰이고 불편은 했지만 충분히 눈 감을 수 있었는데 오히려 종일 집에 있어야 하니 견딜 수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다른 소비에 쓸 돈을 인테리어를 하거나 집을 정리하는 데 사용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타격이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정리수납이 더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TV에서 집을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난 것도 저변 확대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작업이 끝나고 지하주차장까지 따라 내려와 비용 정산을 하셨던 고객님 생각이 난다. 남편이 알면 안 된다고 비밀이라 하시며.

어떤 땐 작업 중간에 혹시 남편이 들어오면 교회에서 온 것처럼 ‘집사님’이라고 본인을 불러달라 하셨던 고객님도 계셨고, 정리수납 1급 과정 실습처로 제공돼서 정리비용은 서비스받는 거라고 입을 맞췄던 작업도 있었다.


모두 집 정리를 집안일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그런 곳에 돈을 쓴다는 건 주부로서의 직무유기쯤으로 생각을 했던 터라 그런 해프닝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남편들이 회사에서 먼저 정리서비스받은 동료의 추천을 받아 연락을 주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졌다. 그만큼 이제 정리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리라.




최근에, 결혼한 딸들의 2년 설득 끝에 정리를 의뢰해 주신 고객님 댁 작업 2회 차 중 1회 차를 마쳤다. 거주하는 분은 고객님 부부 두 분 이신데 3남매의 성장 흔적이 그대로라서 짐이 만만치 않아 부득이 2회 차로 나누어 작업이 진행된다.

1회 차 주방정리를 받으신 고객님께서 “정리를 도대체 어떻게 해준다는 건지 딸들이 하도 하라고 해서 하긴 하는데 어제까지 정말 걱정이 너무 많았는데 이렇게 하고 보니 맘이 후련하다”하시며 다음번 작업을 기대하셨다. 내년이면 남편분이 정년퇴임 이신데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하신다고.

이렇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에 힘을 보태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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