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수납전문가입니다
냉동실을 싹 비워달란 요청을 받았다.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하니 금방 음식물 산더미가 하나 생겼다.
냉장실도 몇 가지 빼고는 거의 비웠다.
냉장고가 터질 듯이 꽉 차 있었고, 날짜만 잘 지켜 먹었으면 훌륭한 양식이 되었을 식재료들인데,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들어가는 순간 그건 그냥 쓰레기가 된다.
그래도 뭐 하나라도 남길 게 있는지 살펴보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곶감이 아직 색깔도 예쁜 주황색이라 만져봤더니 해동이 되었음에도 딱딱하기가 가죽 저리 가라다.
별 수 없이 쓰레기봉투로 직행.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아니 좁은 땅덩이 대한민국 안에서도 누군가는 굶주림에 허덕일지도 모를 이 순간에 멀쩡했을 식재료와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다는 올해 담근 김장 김치가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가 그대로 쓰레기가 되었다.
하루 이틀 하는 일이 아닌데도 음식을 버리는 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다.
어려서부터 '먹을 걸 버리면 천벌 받는다'는 얘길 들으며 자라 온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식품을 버리는 일은 해도 해도 마음으로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오래전 햇병아리 팀원 시절, 어느 건설회사 회장님 집 냉동고 서너 대를 텅텅 비운 적이 있다.
팔뚝만 한 굴비와 손바닥만 한 전복, 색깔도 멀쩡한 옥돔에 갈치, 아직도 싱싱해 보이는 멸치와 햇김들
각종 냉동 과일과 떡, 비싸 보이는 고기들까지 정말 싹 다 버렸다.
비닐포장을 뜯고 비닐은 비닐끼리 음식물은 음식물끼리, 그렇게 음식물들이 섞이는 순간 이제 더 이상 음식물이 아니라 그저 쓰레기다.
100L 크기의 비닐봉지로 4개 그러니까 400L 정도를 버렸다.
'먹을 수 있는 걸 버리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어서였을까?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모습으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부터일까?
멀쩡했을 음식물들을 버리노라면 나 혼자 하늘에 변명을 하는 버릇이 있다.
'하느님 이거 제 꺼 아니에요. 저한테 벌 내리시면 안 돼요'
오늘도 김장김치를 통째로 쓰레기봉투에 넣으며 그랬다.
하느님 제 꺼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