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수납전문가입니다
몇 해 전, SNS에 올린 내 정리 작업 사진들을 도용당한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떤 이의 인스타그램에 내 작업사진 몇 장과 거기에 덧붙여진 소설 같은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 신대방동, 월곡동에서 작업한 사진들인데 뜬금없이 울산이며 부산 용호동에서의 작업이라며 소설처럼 작업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그럴듯하게 쓰여 있었다.
곧바로 DM을 보내 항의했더니 사진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랬단다.
'맘에 들면 그래도 되는 거야? '
지켜보고 있을 거니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한동안은 정말 지켜봤는데 결국 계정을 삭제하고 사라져 버렸다. 아마 새로 정리 사업을 해보려 는데 증명해 보일 무언가는 없으니 그랬던 모양인데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달랑' 사진 한 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는 나와 내 동료들의 수많은 고민과 열정, 시행착오 끝에 얻은 모든 결과들이 담겨있다. 단순히 사진 몇 장 도용한다고 해서 단숨에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과정에 대한 진지한 이해도 경의도 없으면서 거짓으로 쉽게 그 과정을 건너뛰고 일을 해보려고 작정했다는 것이 그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정리수납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전혀 의도하지 않아도 고객의 가장 내밀한 곳을 보게 될 수 있다. 어떤 속옷을 입는지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무얼 먹는지와 학력, 경력, 직업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문제를 일으킨 남편이 쓴 각서와 이혼하려다 그만둔 서류들을 보기도 한다.
정말 순수하게 우리 할 일만 하고 있다가도 널브러진 살림을 정리하다 보면 그냥 알게 된다.
또 어느 땐 오래도록 쓰지 않은 책장 제일 바닥에 놓여있던 파란 벨벳 상자에서 잠자고 있던 황금 열쇠를 찾아 드리기도 하고 치매 할머니께서 꽁꽁 숨겨놓으신 돈뭉치를 발견해 드리기도 한다.
그러니 작업하는 하루동안 고객님은 믿는 마음이어야만 우리에게 집을 맡길 수 있고 우리는 당연히 그 믿음에 부응하는 처신을 해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마는 내 집을 구석구석 내보이며 정리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야 말로 정리를 하는 사람이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 모두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거짓을 끼워 넣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대로 그는 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혹여라도 다른 이름으로 계속하고 있다면 이제는 정말로 진심으로 노력해서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집 정리를 맡기려는 수요가 많아지는 만큼 생겨난 쉽게 일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정리수납전문가로서의 내 자부심이 상처받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