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터지는 듯한 굉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길고 웅장하다.
무슨 일이지? 차 사고라도 난 걸까? 사고가 날 만큼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마음 놓고 속도 내다가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임순희 어르신 댁에 가고 싶지 않다고 미적거리던 현정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후다닥 고개를 돌린다.
산 뒤에서 풀풀 올라오는 검은 연기만 보이는 상황이라서 정말로 차 사고가 난 것인지 확인할 순 없다. 거리를 가늠하려고 해도 연기가 워낙 자욱하게 퍼지고, 무언가 타면서 나는 냄새도 심하게 풍겨와서 쉽지 않다.
이장의 집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 나와 연기가 나는 산 뒤쪽을 기웃거린다. 눈 주변이 붉게 일어난 영연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고, 현은은 “어머, 저게 무슨 일이야?” 물어보면서 보이지 않는 검은 연기의 출처를 보기 위해 발꿈치를 들고 기웃거린다.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석혁까지 나와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미윤은 고개를 돌려 마을 안쪽을 바라본다. 분명 저 끝, 지붕만 조금 보이는 집에 임순희 어르신이 계신다는 걸 알면서도 텅 빈 공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을에 도로가 놓이려면 반드시 한 순간은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눈으로 보고 나니 기분이 묘해진다. 문득 아이 하나 없이 나이 든 어른만 조금 남아 있는 마을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한때는 골목마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루 종일 흙을 만지고 놀아도 저녁 시간만 되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운 아이들부터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깔깔 웃는 아이들까지. 그들이 내는 소리가 마을의 활기였음을, 미윤은 그 나이를 벗어나고 난 뒤에 느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연못 마을에 정이 남았다거나, 없어지기를 바랐지만 막상 와서 보니 망설여진다는 건 아니다. 그저 누군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임에도 이렇게까지 생기가 없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차피 마을 회관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미윤은 먼저 자리를 빠져나온다. 누군가 그렇게 사라져 주기를 바랐다는 듯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진다.
서울 여자들은 돌아가기 전에 여기에 오겠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물어보자. 물론 마을 사람들이 집과 땅을 팔고 나가야만 공사가 시작되고, 지급하기로 약속된 보험금이 들어온다는 걸 알지만,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가 있으니 닦달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듯싶다.
현관문처럼 꽉 닫히는 문이었어도 탄내가 슬금슬금 들어왔을 텐데, 서로 헐겁게 붙는 유리만 덜렁 서 있으니 틈으로 들어오는 냄새를 막을 수 없다.
바람이라도 강하게 불면 냄새가 사라져서 좋을 텐데, 여름 날씨란 늘 그렇듯 눅눅하고 묵직하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방울이 둥둥 떠다니며 검은 연기를 쪽쪽 빨아먹고, 멀리 날아가는 대신 마을 곳곳에 눌어붙은 듯했다.
그래도 사람은 상황이 주어지면 거기에 금방 적응한다고 하던가. 처음엔 코가 찌릿거리고 관자놀이가 아플 정도로 냄새가 심했는데, 점점 반응이 둔해지고 어느 순간은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게 된다.
바닥에 베개 하나 던져놓고 그 위로 눕는다. 이대로 뒹굴거리면 허리가 아플 거란 사실을 잘 알지만, 일어나서 이불을 펴거나 너무 오래 사용한 탓에 이미 푹 꺼진 소파 위로 자리를 옮기고 싶진 않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미윤은 의식적으로 사고에 대해 찾아보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검은 연기가 저렇게까지 차오르면 몇 줄 안 될 기사라도 나온다는 걸 머리론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다. 큰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난다는 이유로 기사가 뜨면, 어쩐지 이 마을에 주목이 쏠릴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 안 된다. 관심이라는 건 금방 식기도 하지만 금방 타오르기도 한다. 갑자기 관심이 쏟아지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사람이 마을 내에 몇 있다. 현은의 호들갑과 임순희 어르신의 장수가 합쳐지면 사람들의 관심은 타오를 거다.
원인 모를 사고가 생겼다고 해서 그 정도의 커다란 관심이 생기지 않을 거란 사실은 알지만, 도로를 놓겠다고 나선 회사 입장에선 움찔할 수도 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특별히 남 하는 일에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사고를 기억했다가 도로 건설 관련 뉴스에 댓글을 남길 수도 있다. 요즘은 댓글을 없애는 추세라고 하지만, 전달 속도가 더 빠른 SNS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
미윤은 아랫입술에 일어난 각질을 뜯으면서도 절대 찾아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번 찾아보는 건 어렵지만, 내 검색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언제 어떤 사고를 보여줄지 모르는 법이다.
티브이를 켜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고를 수 있는 채널이 얼마 없는 시골 티브이에 언제 속보가 뜰 지 모른다.
이미 봤던 영상을 보고 또 본다. 스마트폰에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본 영화를 틀어놓고 일 분도 되지 않아서 눈을 감는다. 화면 속 배우들의 움직임이 어둠 위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귀에 대사가 닿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먼저 읊고 있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 속에서 불안은 더욱 커진다. 종종 빚쟁이에게 쫓기는 꿈도 꾸는 마당에 생산성 있는 일을 해내고 있지 못하니, 안 그래도 울렁거리는 마음은 더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좋다고 하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니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부정적인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 처음부터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되는데, 아니라고 꾸역꾸역 우기다가 결국 현실을 마주하면 기운이 쭉 빠지는 건 덤이다.
도저히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겨우 한 가닥 줄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도로 제자리인 듯한 기분은 뭘까. 이 상황에서 무언가 바뀌기는 하나?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연기 때문에 창문을 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서 더 그렇다. 미윤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팔로 눈가를 가린다. 과연 내가 잡은 게 내 앞길에 도움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