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네? 비상계엄이요? 그게무슨개풀뜯어먹는소리죠?

by 이홍

그렇게 식어가고 있던, 아니 사실 다 식었던 여자 배구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게 된 계기는 2024년 12월 3일부터 시작된다.

이것도 불면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잠은 일정하지 않다.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는 날이 나흘 이상 이어지다가 갑자기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자고 일어나는 일. 스마트폰을 뒤집어놔도 액정에 깜빡 불이 들어오면 잠이 깨고, 방문까지 꽁꽁 잠그고 자도 옆집 현관문 닫는 소리에도 깨는 날들.

잠들었다 싶었다가 어느 순간 눈을 뜨면 새벽 세 시를 넘어가지 않은 시각이었고, 그때부터 잠이 오지 않아서 억지로 새벽 일을 하던 시간은 안 그래도 만사 예민한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체력이 성하지 않으면 사람은 모나지기 마련이다. 나는 내 예민함을 핑계로 주변에 피해주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싫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만 피곤한가? 다른 사람도 피곤하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라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나는 할 말 다 하면서 쿨하다고 포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 부끄러워. 매우 반성하고 있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면이다. 솔직히 지금도 이 습관을 잘 고치고 있단 확신은 없다. 그런 건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말을 들어야 하기에.

나쁜 습관은 편안하다. 금방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버릇을 넘어 나 자신의 특징이 되어 버린다.

내 주변을 그렇게 대하는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쉽진 않았다. 쿨하다고 포장하려는, 남을 상처 주는 말은 나에게 너무 오래 붙어 있었다. 즉, 나는 내 익숙해진 말 습관을 바꾸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신경 써야만 한다는 뜻이다.

머리와 입 사이에 필터 몇 장을 더 끼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처음 할 땐 다 그렇다. 생각 자체를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꾸는 게 힘들었으니, 같은 말도 괜히 가시 몇 개 더 박아서 던졌던 습관이 하루 아침에 때 벗겨지듯 사라질 리가 없었다. 지금보다 나쁜 말이 더 쉬웠을 땐 입술 밖으로 덜렁덜렁하게 걸친 말을 삼키느라 급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은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뾰족한 말을 혀끝으로 다듬는 일에도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법인데, 잠을 자지 못하면 체력 충전은커녕 우유 속에 빠진 듯 머릿속이 뿌옇게 변한다. 걸어 다니는 게 아니라 바닥을 떠다니는 것 같다.

분명 앞에 무언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피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누군가 옆에서 말하면 소리가 느리게 입력된다. 그에 비해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아주 빨라진다.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큰 자극에도 느리게 반응한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찾아갔을 때, 잠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약을 챙겨 먹으면서 꼭 수면 패턴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제대로 자지 못해서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하루를 보낼 스케줄을 세워도 소용 없다는 것 또한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2024년 12월 3일엔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꾸준히 상담 받고 약 먹은 보람을 느낄 정도로 정신이 건강해지는 걸 느꼈다. 사소한 일에 화가 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이 길어지려고 하면 적당히 끊어내는 법도 차근차근 배우고 있었다. 언제까지 병원에 다녀야 말끔하게 나을까?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찻길에 뛰어들고 싶단 생각은 안 드니까 다행이라고 여기며, 정해진 시간, 정해진 날짜에 빼먹지 않고 병원을 다녔다.

내 일상이 순조롭게 돌아갈 거라고 기대했다. 좋지 않은 일을 겪었으나, 결국엔 지나간 일이고 그것을 겪었으니 지금의 내가 됐다는 생각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거짓말처럼 뚝 떨어진 그날을 기억한다. 나는 그날 해야 할 일을 끝마치고, 이미 몇 번 이상 본 영화를 틀어놓고 귀에 익은 대사를 들으며 필사하다가, 수면 패턴을 지키기 위해 자러 가려고 했다. 잘 준비를 끝내고, 노트북을 끄려고 했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단어를 보기 전까진.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나머지 저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며 못 알아들었다. 그 다음엔 혹시 전쟁이 일어났나? 겁이 났고, 유튜브를 통해 긴급 속보를 보면서 멍해졌다. 솔직히 ‘저게 지금 뭐라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자꾸 비상계엄이라는 글자를 보니까 이게 맞는 글자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럴 줄 몰랐나? 알긴 했다. 대선 결과를 아침에 보고 새로 고침을 삼백 번 정도 하면서 현실 부정하다가, 머리채도 좀 뜯어봤다가, 뺨도 몇 대 때려봤다. 무슨 일을 저질러도 크게 저지르겠구나, 아무래도 오 년이 조용하게 지나가진 않겠구나. 암담하다...

하지만 설마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 좋게... 좋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란 우두머리에게 좋은 말 나올 게 뭐 있겠는가. 그래도 읽는 독자를 위해 최대한 순화시켜서 써보자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있으니까 저런 짓을 했겠지? 아니 없으니까 했나? 뭐지, 저건? 머리털 나고 그런 짓거리는 처음 봤다(사실이기도 하다. 비상계엄이라니, 나는 그런 단어 교과서에서 봤다). 왜 저러지?

잠? 웃기는 소리. 강제로 새벽까지 유튜브를 봐야 했다. 국회 창문이 부서지는 게 현실감 없어도 너무 없어서 이상했다. 그 외엔 무슨 생각이었는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저녁 약을 먹은 상태였고, 그 다음 날을 이어가려면 잠을 자야 했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뒤에 노트북을 껐다. 사실 계엄 해제까지 보고 싶었는데, 그러기 쉽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나니 잠이 오긴 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아니라고 여겨야 할지 모를 상태로 잠들었던 기억.

하지만 다음 날을 잘 이어가진 못했다.

속보가 쏟아졌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얼레벌레 옅은 잠을 자고 난 뒤에 보는 것들은 대부분 선명하지 않다. 귀엔 계속 새로 들어온 속보라며 자극적이고 뒷목 서늘해지는 소식이 꽂히고, 눈엔 새벽에 실시간으로 보았던 계엄군의 국회 침입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됐다.

한 문장 쓰는 일도 어려웠다. 지금 일을 하는 게 맞긴 한가? 늦은 새벽에도 국회 앞으로 달려 나갔던 시민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그래도 뭘 해야 한다는 마음에 한글창을 켰다가 새로 들어온 속보에 충격 받고, 다시 키보드에서 손을 내리고...

안다. 내가 내 할 일을 미뤄두고 뉴스 속보를 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단 사실을. 물론 모두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고, 차근차근 밝혀져야 할 진실이지만, 당연히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시 내 생각과 마음은 그렇게 널널하지 못했다.

세상이 좁아지는 기분. 난데없이 새까만 벽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느낌. 돈과 시간을 투자해 나아지려던 정신 건강은 내란 우두머리가 주도한 기가 막힌 상황에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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