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무슨개풀뜯어먹는소리가 나에게 준 영향

우울증과 그로 인한 불안증세 묘사 있음. 트리거 주의.

by 이홍


우울증과 그로 인한 불안증세 묘사가 있습니다. 읽으시기 전에 참고해주세요.

















무슨개풀뜯어먹는소리가 주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많은 것을 빼앗겼다. 나의 시간, 건강, 일할 수 있는 마음가짐, 마감을 지키겠다는 다짐 등등. 물론 얻은 것도 있었다. 불안, 초조, 자괴감, 악몽 등등.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망가진 게 많은데, 이건 나중에 차차 쓰기로 하겠다.

이제 좀 낫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뭐임? 내 돈이랑 시간 어떻게 할 거임? 니가 병원비 낼 거임?

할 수만 있다면 고소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했지만, 그걸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기엔 내 상태가 심각했다. 실제로 나는 내란수괴 파면 직전까지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악몽을 꿨다.

나도 내가 겪는 공포와 불안이 이해되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은 그건 당연한 공포인 거라고 말씀해주셨지만, 그걸로는 완전히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내 안에 존재했다. 뭘까.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떠는 이유가 뭘까.

쏟아지는 속보에 얻어맞은 듯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키보드에 말 그대로 손만 올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시위에 참여하고, 이상하리만치 회복되지 않는 몸상태에 끙끙 앓았다.

시위에 나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알고 있다. 나가서 직접 의견을 표출하면 좋다. 하지만 연대는 그렇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넉넉할 땐 그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마음이 넉넉할 틈이 없었다.

다들 알겠지만 2024년 12월 3일 이후로 쏟아지는 속보가 얼마나 많았는가. 심지어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고 있지 않다. 구속만 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지금도 그들이 한 행동은 밑바닥에서 수면 위로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시위에 나가면 꼼짝없이 앓아누울 걸 알기에, 나가려면 크게 마음먹고 가야 했다.

며칠 꼬박 모은 체력으로 시위 현장에 가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가득했다. 제대로 자지 못한 귀에 쩌렁쩌렁 울리다 못해 찢는 듯한 전기음이 그대로 꽂혔다. 내 숨소리도 거슬려서 귀마개를 장시간 이용하지 못하는 나는 스피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최선의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피할 수 있던 건 아니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소리가 크다. 어딜 가나 분노한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롱패딩을 입어도 바닥이 차가웠다. 두꺼운 겨울 옷으로 꽁꽁 무장하고 가도 금세 추워졌다. 손은 금방 얼었고, 몸에 덕지덕지 핫팩을 붙여보아도 내 몸 전체를 따뜻하게 해주진 못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나는 사람 목소리를 많이 들은 날엔 꼭 사람이 거의 없는 곳으로 도망쳐서 쉬어야 한다. 사람 목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날엔 노래 한 곡도 마음 편안하게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기엔 사람 목소리를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시위를 마치고 잠들기 직전까지 뉴스를 봐야 했기 때문에.

이런 체력적인 힘듦, 개인이 가진 예민함은 조금만 노력하면 될 일이다.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 더 단단히 준비하면 된다.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괴롭다면 최대한 뒤쪽으로 빠져 시위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이건 답이 없었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해가 짧은 겨울에도 날이 밝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나는 항상 오후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집에서 나섰다.

그 행동이 부끄러웠다. 고작 몇 시간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누군가는 앞으로 나서서 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당당히 투쟁을 외치는데 그걸 듣고 박수 치는 내가 부끄러웠다. 가서 한 것도 없이 몸만 아픈 내가 부끄러웠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이런 생각을 나에게 말해줬다면,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답할 거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같을 수 없고, 연대라는 건 많은 사람들 앞에 몸소 나서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짧은 시간이나마 그 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그런데 왜 나 스스로에겐 그런 말을 할 수 없을까?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괴로웠고, 밖으로 나가도 괴로웠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전부 부끄러웠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이것이 천천히 나아지고 있었던 내 정신병이 순식간에 뒷걸음질 쳐서 원상태로 돌아오기 직전이었다는 사실을.


그런 날이 이어지는 동안, 이 심각한 불안의 원인을 추측했다. 아슬아슬하게, 느리게 걸어가도 차근차근 앞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길이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내 꿈이 확고했기 때문에, 느리지만 단단한 길 위를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상계엄으로 인해 걸어가고 있던 길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꾸준히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름을 날리는 작가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에게 닿기엔 내 목소리는 너무 작다. 글을 갈고 다듬는 일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도깨비 방망이 휘두른 듯 뿅 사라져 버렸다.

당시 영화 시나리오를 모집한다는 공모전에 대본을 낸 적이 있다. 어설프기 짝이 없고, 시나리오 쓰는 법도 모르면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써서 냈다. 그 후 조금 더 공부를 해보니 내가 쓴 건 시나리오라기 보단 연출하고 싶은 촬영 기법과 대사, 지문을 섞어 쓴 짬뽕 같은 글이었다.

거기엔 내란수괴를 풍자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일부러 넣었다. 하는 짓이 기가 막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소설뿐이었고, 당시 관심 가지기 시작했던 건 영화 시나리오였다.

늘 하던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더 했다면 그런 짬뽕 같은 글은 나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아쉬웠겠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짬뽕이다.

망설이고 있는 것보다 일단 쓰고 난 다음, 거기서 고쳐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나는 그때 나온 시나리오의 탈을 쓴 짬뽕글을 좋아한다. 시나리오와 영화 연출에 대한 부분을 더 배우면 반드시 완벽하게 완성할 생각이 있다.

어쨌든. 시나리오 공모전에 글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내란이 일어났다.

새벽까지 뉴스를 보다가 잠들어서 다음 날 뉴스를 보는 동안, 나는 무심결에 그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만약 내가 지금보다 목소리가 큰 작가였다면, 누군가가 내 글을 사랑해주고 나를 아껴주며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상황이었다면 덜 두려웠을까?

길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내 발 주변이 무너져 내렸다. 기반도 잡지 못한 주제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아서 이것저것 떠들다가 이 꼴이 난 거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뒤론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불안하고 막막했다. 내 짬뽕글을 못마땅하게 봐서 나의 작은 것 하나까지 검토해서 잡아낸다면 내 주변은 어떻게 될까? 가족은 물론이고 친한 친구한테도 영향이 가지 않을까? 그러면 어떡하지?

얼마나 자아 거대한 생각인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다. 누가 내 글을 보겠어. 당선작도 아니고, 순위에 든 작품도 아니고, 그냥 예선 탈락한 글인데 거기까지 보겠어? 내가 뭐라고...

그래서 더 위험한 거 아닐까? 내가 뭐 되는 게 아니라서, 나 같은 건 그냥 찍어 눌러도 아무도 모를 테고, 어디 가서 죽어도 모를 텐데. 그리고 그게 나 혼자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닐 텐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란 이야기도 사랑한다.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내 사랑이 내 주변에 칼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마음 속에서 점점 커져 갔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깟 글 같지도 않은 거 누가 보냐, 자책하다가 그래서 더 위험하지 않을까? 앞으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하나? 외면해야 하나? 주변을 위해 이 상황을 외면하고 살아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살진 못할 거 같은데, 불안해하다가 그러니까 대체 이 나이까지 뭘 한 건지 한심하다, 남들은 더 이른 나이에 등단하던데 나는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지, 자책하다가.

치료를 받으면서 나쁜 마음이 들면 끊어내는 방법을 배웠고, 차근차근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창문 밖만 가만히 내다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숨을 내쉬어도 명치가 턱턱 막혔다.


그런 순간에 빛을 발한 건 시간 맞춰 병원 찾아가던 성실함과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았다는 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어느 날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생각에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정신을 차렸다. 뭐라도 하자. 불안을 없앨 수 없다면 잠시나마 정신 팔 수 있는 것을 만들자. 앞을 보는 게 벅차다면 살짝 고개를 틀어보자. 시야를 넓혀서 나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찾자.


그리고 내가 찾은 게 바로 여자배구다. 마침 딱 24-25 V리그 시즌이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배구 경기장이 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힘들었기에 숨만 쉬자, 잠시라도 눈을 돌려보자, 힘든 상황에서 나를 지킬 수 있어야 다음이 있다, 생각하며 여자배구를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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