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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장수 Mar 10. 2020

나는 3년 차 백수다

그래도 아직은 행복하다


지금 나는 백수다.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이렇게 이야기 하나. 물론 처음부터 백수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2년 전에 10년 동안 일한 회사를 그만뒀다. 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냐고 하겠지만, 10년 동안 버틴 것도 장한 일이었다. 처음 입사 합격 통지를 받고 신입직원 연수를 시작한 첫날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이런 내가 10년 동안 눈물 질질 짜면서 견뎌낸 것도 대견한 일이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실제로 만성적인 질환이 생겨서 이렇게 일하다가 만신창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성격은 자라면서 바뀐다고들 하지만, 나는 늘 일관되게 사회 부적응자였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자면, 낯을 가려 늘 누군가 뒤에 숨으려고 했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면 몸을 배배 꼬며 말을 더듬거렸고, 이런 모습은 보는 사람들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에도 체육시간이 싫었고, 늘 책상에 앉아서 조용히 딴짓을 하며 멍 때리는 일이 유난히 잦았다. 떡잎부터 내 성격은 그러했다. 이런 나에게 집단주의와 성과주의를 가치로 내세우는 기업에서 나는 늘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출근 전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하고, 오늘 하루도 힘내자고 최면을 걸어보지만, 음울한 기운이 아련히 새어 나왔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회사를 바로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대기업이라는 명함과 높은 연봉이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결혼을 하려면 사회적으로 인식이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온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일이 힘든 것보다 날마다 스스로와의 싸움을 해야 했고, 돌아오는 결과는 늘 할퀴고 뜯긴 패잔병의 마음이었다. 유리 멘탈을 가진 나는 상대방의 말에 너무 쉽게 상처를 받고 부서졌다. 결국 나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소심하게 사표를 내게 되었다.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면 후회를 하게 될 것이며, 이만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설득했다. 갈팡질팡 했다. 하지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의 후회보다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읊조리며 내 생각을 강화했다. 그리고 회사를 나왔다.


홀가분했다. 처음 느끼는 자유였다. 아침 일찍 쓰린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1개월…6개월…1년… 2년의 시간이 지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마음껏 했던 것 같다. 출판 편집 일을 배우고 싶어 어린 학생들과 국비교육으로 학원을 다녔고,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고,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하루 종일 책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불안감이 불현듯 찾아왔다. 2년의 시간 동안 넌 무엇을 이뤘니? 나는 2년 동안 한 일들을 복기하며 나열했다. 나는 이런이런 공부를 했고, 어떤 자격증을 취득했고, 어떤 일을 했고,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스웠다. 내가 그토록 맞지 않아 했던 성과주의 논리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너는 지금 행복하니?


행복하기 위해서 용단을 내렸던 나인데, 왜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불안한 눈빛들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예전에는 나는 회사 명함이나 업적으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끔씩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꿈과 행복을 이뤄가는 과정에는 인내가 따르는 것 같다. 조급해하지 말고,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열렬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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