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은 Sep 15. 2021

[인문학으로 읽는 외식업]선한 사마리아인 (1)



꽃밭 주위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꿀벌들을 보고 하루는 독수리가 비웃었다.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 게으른지 표도 안 나는데 무엇하러 그렇게 부지런을 피우나?"

그러자 꿀벌들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날개 달린 짐승이라면 누구든 당신을 겁내고 장난꾸러기 목동조차 당신이라면 벌벌 떨지만,

그렇게 당신은 위대한 분이지만, 다만 한가지를 모르고 계시군요.

당신은 당신만을 위해서 살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 살지요."

<첫년 벗과의 대화>에서 재 인용


러시아의 우화 작가인 이반 크르일로프(1769~1844)가 쓴 글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 살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 우화입니다.

이게 참 어렵습니다.

마음으로는 나 아닌 다른 사람까지 생각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바쁘고, 힘든 상황이 생기면 일단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게리켈러와 제이 파파산이 쓴 <원씽>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학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1973년에 시행된 실험입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어려움에 처한 낯선 사람을 도울지 말지에 대해 결정하는데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신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한 그룹에는 신학 활동에 대한 발표를 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은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발표를 하도록 과제를 부여하는데요.

각각의 그룹을 다시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오게 한 그룹과 시간적으로 여유를 주는 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리고는 한가지 상황을 설정합니다.

학생들이 발표 장소로 가는 길의 바닥에 주저앉아 심하게 기침을 하는 남자를 배치한 겁니다.

곤경에 처한 남성을 신학생들이 얼마나 돕는지를 보려는 의도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남성을 돕기 위해 걸음을 멈춘 사람은 전체 학생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늦었다는 말을 들은 학생의 90%는 남자를 돕지 않았고,

심지어 남자를 밟거나, 걸려 넘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아마 저 같아도 그랬을 겁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성경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당시에 존경받던 제사장, 레위인은 지나쳐 갔는데,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살려 주었다는 내용인데요.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약자를 도우며 살아라'는 의미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이며, 진정한 친구라는 뜻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반 크르일로프의 우화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외식업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식당을 경영하며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이나

물질적인 도움을 주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외식업 경영자가 가장 살펴야할 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요.

경영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제1의 고객'이라 말하는 직원 말입니다.


외식업 경영자들에게 "식당을 경영하며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비슷한 대답이 돌아 옵니다.

바로 '사람' 즉 '직원' 때문에 힘들다는 건데요.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식당을 경영하며 함께 일하는 직원을 뽑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채용 관련 사이트나 앱에 채용 공고를 올려도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직영매장의 점장은 '팔 다리만 붙어 있어도 뽑고 싶다'라는 볼멘 소리를 하더군요.

그만큼 사람을 뽑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힘들게 뽑은 후에도 문제는 계속 됩니다.


'급여가 작다, 복지는 어떤 것이 있느냐, 부식비를 올려달라, 퇴근시간 3분 지났다, '며

경영자의 속을 태우는 직원이 한 둘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의 비위를 맞추고, 교사가 학생 앞에서 벌벌 떨고,

경영자가 직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뜻으로 조금은 과장해서 표현해 보았습니다.


비록 직원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함께 도와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건데요.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으로 읽는 외식업] 자강불식(自强不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