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이야기

#2 바티칸(Vatican City)

by 카오스 혜영

바티칸은 시국, 즉 도시이면서 나라이다. 지리적으로 로마의 일부일지는 모르겠으나 로마의 이름으로 묻어버리기에는 남다른 존재감과 무게를 지니고 있는 땅인지라 나의 두 번째 도시 이야기에 감히 이 성소를 올려본다.

바티칸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 아니, 입국장이라고 해야 하나 - 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성과 속을 가르는 듯한 높다란 성벽과 그 성벽 위로 솟아오른 소나무들을 보며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드디어 전 세계 11억 가톨릭인들의 성지가 입국자들을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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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은 전체가 박물관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수두룩하니 회랑을 지날 때마다 어느 작품을 먼저 보아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 아닐 수 없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라오콘 군상”이었다. 명성에 걸맞게 이 조각상 앞에는 눈에 띄게 많은 사람들로 밀집해 있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그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천년도 더 이전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 조각은 트로이의 목마로 잘 알려진 트로이 vs 그리스 전쟁 중 그리스 편에 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고 죽어가는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의 고통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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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라오콘 군상과는 달리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라도 다 알법한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를 만날 수 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에서 그 비통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부정이든 모정이든 인간의 감정과 고통, 예술적 감동에는 성과 속이 따로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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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바티칸을 가게 되면 꼭 보고 싶은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또 다른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작품인 “아테나 학당”이다. 웬만한 철학 입문서나 서양철학사에 꼭 등장하는 이 그림은 교황의 서재 벽화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두 거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사상가들과 수학자. 현자들이 주변에 그려져 있다. 가톨릭의 수장 교황의 서재에 어찌 보면 이교도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 좀 아이러니 한데, 르네상스의 영향이었을까 그 당시 교황청에도 예술에 있어 그 정도의 포용은 용납되었던 듯하다.

하늘의 이데아를 향한 플라톤의 손끝과 지상의 실재를 포용하듯 덮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 이 두 철학자의 손에서 발원한 서양철학의 강물은 지금도 양갈래의 물줄기가 되어 도도히 흐르고 있으니 인간 정신의 심오함은 고금을 초월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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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해도 바티칸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기 전, 다리 쉼도 할 겸 예술의 홍수에 젖은 옷도 좀 말릴 겸 바티칸 경내 소박한 카페에 잠시 앉았다. 이 카페에서는 파는 커피를 교황님도 드신다고 하는데 어찌 안 마셔 볼 수가 있을까. 그래서인가 바티칸 경내 카페에서 마신 그 커피는 여태까지 마셔본 중에 가장 달콤한(?) 에스프레소로 기억된다

시스티나는 베드로 대성당과 함께 바티칸을 대표하는 성당이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기도 하나, 관광객들이 이 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보기 위함일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이 작품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듯하며, 다만 시스티나 성당을 들어서는 순간 펼쳐진 그 그림 -사실 그림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송구한- 아래에서 무엇인가에 압도당한 듯 잠시 숨이 멎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웃 포커싱 되는 것 같던 그 순간을 다시 회상할 뿐이며 예술과 그 예술을 창조한 거장의 위대함에 경이를 표할 뿐이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베드로 대성당을 지나 베드로 대광장을 나서면 작지만 거대한 도시 바티칸 여행은 끝이 난다. 커다란 베드로 대성당의 돔과 광장을 에워싼 수많은 조각상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스위스 근위병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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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을 벗어나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산탄젤로 성을 바라보며 길지 않은 시간을 걷다 보면 로마의 피오리 광장에 도착하게 된다. 주변에 몇 개의 식당들과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장터가 열리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이 광장의 중앙에는 “조르다노 부르노”의 동상이 서 있다. 사실 이 피오리 광장은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은 아닌데 브루노가 화형을 당하고 묻힌 곳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일부러 찾아갔더랬다.

16세기 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몇 년 전, 지구 중심의 정통 천문학을 부정하고 우주 중심의 과학 이론을 고수하다 가톨릭에 의해 화형을 당한 조르다노 부르노...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서 끝내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지동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부르노의 처형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거대 권력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일이 쉽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일 것인데, 죽어서 까지 자신을 처형한 가톨릭이라는 거대 권력 중심부의 턱밑에서 외롭게 영면에 들 수밖에 없는 부르노의 영혼은 누구에게 위안받을까. 그래서 부르노는 자신이 처형당한 그 자리에 동상으로나마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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