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콘서트장의 최고령자

오십 세에MUSE내한 공연장을찾은 어느 아줌마 이야기

by 카오스 혜영

아마도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동네 골목마다 하나씩은 있곤 했던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ABBA의 Dancing Queen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나의 인생의 크고 작은 변곡점 중의 하나로 바로 그 시간이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 그 날 이후 나는 비틀즈를 만났고 사이먼 & 가펑클을 알게 되었으며, 연습장 한편에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Woman in love 가사를 영어로 또 한글로 빼곡히 적어놓고 줄줄 외우기도 했었다.

그뿐인가. 용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공테이프를 사서는 라디오가 탑재된 카세트 플레이어에 장착한 후 FM 라디오 팝 음악 프로그램을 듣다가 좋아하는 팝송이 나오면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러 나만의 음악테이프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팝송의 세계와 조우하게 된 나는 이후 여러 가수와 장르를 유랑하다 결국 Rock에 정착함으로 오랜 세월의 방황을 끝내게 되었다. 결코 가볍지 않으며 강렬한 Rock의 사운드는 두 귀가 아닌 온몸으로 느껴 들어야 하는 진동이었으며 Rock의 비트는 심장을 파고들어 맥박을 타고 말초신경까지 뻗어나가 유기체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게다가 퀸,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핑크 플로이드, 라디오 헤드 등 당대 풍미했던 Rock의 전설들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그러나 이들과의 사랑은 결코 영원할 수 없었으니 사회인으로 가족 구성원으로 게다가 출산과 육아, 생계 등등으로 눈코 뜰 새 없었던 3,40대에 Rock 이란 그저 아련한 추억 한 장으로 기억 어디엔가 존재할 뿐이었다.

어느 정도 생계의 발판이 마련되고 아이들도 엄마의 손길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마치 오래전 연인이 그때 그 모습으로 내게 프러포즈라도 하듯 운명처럼 만난 Rock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Muse이다.

이름부터 뮤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여신 이름을 딴 영국 청년 세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의 음악을 어떻게 알게 되고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 그룹의 노래는 지금 이들의 거의 모든 음원을 소장하고 있는 내가 귀 기울여 라디오 음악 프로램에서 들어보려 해도 잘 들을 수 없다. 어찌 되었든 고맙게도 뮤즈는 이렇게 40대 중반쯤 내게로 와 주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흘렀을까. “2015년 9월 30일 뮤즈 내한공연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이 한 줄의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된 것은 내겐 운명이었으리라. 뮤즈가 온다니! 그것도 내가 사는 서울에, 지하철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한다니! 반드시 가야 한다. 가서 전설적인 그들의 공연을 꼭 봐야 한다. 그러나 2015년 9월 딱 오십 살이 된 나는 예매사이트에 접속하고서도 바로 티켓팅을 하지 못하고 망설여야만 했다. 50살 먹은 아줌마가 Rock 공연장이라니! 그것도 좌석 절반은 스탠딩에 사방에서 해드뱅잉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날 것이 뻔한 그런 곳에 갈 수 있겠어? 그건 무모한 짓이고 철없는 짓이야! 등등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며 예매 클릭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티켓팅을 완료했으며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공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대망의 공연 날. 8시 공연시간에 맞추느라 6시 칼퇴근을 한 나는 나름 모자에 안경에 변장 아닌 변장을 하고 공연장을 향하면서도 다시 한번 망설임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정말 가도 될까? 주위의 젊은이들이 나를 보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주책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그냥 이쯤에서 다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등등등.

현장에 도착하여 올림픽 체조경기장 앞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을 보았을 때 이러한 망설임은 최고조를 달했으나 잠시 후 나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에 내 딸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과 함께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가고 난 후에도 나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 중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관객은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명실상부 내가 콘서트장의 최고령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고 매튜 벨라미, 크리스 볼첸훔, 도미닉 하워드 이 세 Muse의 라이브가 들려오는 순간 나는 콘서트장의 평균 연령이 되어 2시간 공연 시간 내내 그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며 때론 부끄럽고 소심한 해드뱅잉도 살짝 시도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최고령으로 돌아와 젊은이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공연장을 빠져나온 나는 약간의 부끄러움으로 푹 눌러쓴 모자 아래로 번져 오르는 미소를 감출 길이 없었다. 그때 내 가슴은 열정으로 가득 차 온전히 뛰고 있었던 것이다.

생체기관인 심장이 뛰어야 유기체인 몸이 살듯이 심장 같은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인가가 정신에도 있어야 영혼이 진정 살 수 있다. 몰입하게 하고 열정을 가지게 하고 그리하여 참살이를 느낄 수 있어야 사람은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다. 더 이상 두근거림이 없어질 때 이미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여러 번의 망설임이 성공했더라면 나는 내게 선물처럼 찾아온 참살이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매일매일 죽어가는 현재를 살아가게 되었을지 모른다.

뮤즈 공연의 마지막은 항상 "Knight of Cydonia"라는 곡으로 끝나는데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Don't waste your time, or time will waste you - 네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너를 허비할 것이다 -"

이미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망설임이나 주저함은 시간에 대한 사치일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도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