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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Nov 09. 2023

새벽



 감기 때문인지 아니면 처방받은 약 때문인지 며칠간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이럴 때면 곧 죽어도 아무것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심정이다. 혼미한 정신이 나약한 육체로부터 계속해서 쫓기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깊은 수렁에 빠져 영영 빠져나올 수 없듯이.


  악몽에서 깨고 일어나면 시간은 새벽 네시였다.

‘이 시간이면 나 말고는 아무도 안 깨어있겠지’ 오히려 편안해져서 불확실한 마음조차 아무 까닭도 없이 희망차보였다. 한 번은 어렸을 때 불면증에 걸렸던 적이 있었는데 새벽에 불을 켜놓고 있으면 방안은 온통 미지의 세계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진짜를. 그것부터가 시초였다. 내 속 안에 있는 ‘나’를 끄집어내기까지 보이는 모습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후회는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된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가끔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존재한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과 이별. 상실의 기억과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은 다시 태어난다. 그런 고통에 비하면 이런 몸살쯤은 일종의 고통을 가지고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불과한다는 게 하나의 위안일 테다.


영화 ‘C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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