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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Sep 14. 2024

불행이 식빵처럼 웅크리고 싶을 때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느 때처럼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산책을 한지 십여분 흘렀을까. 나무와 벤치 사이로 길을 걷고 있는데 그곳에 길고양이 두 마리가 몸을 식빵처럼 동그랗게 말고 앉아있었다. 어찌나 그 모습이 귀엽고 평화로워 보이던지 한참 동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을 목격했는데 모두 하나같이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뒷걸음을 걸으며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길가에서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햇살처럼 온화해지는 순간이었다. 서로 다른 존재가 살아간다는 것.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공존을 한다는 것. 그것은 두 개 이상의 존재를 이해하는 법을 넘어 종국에는 사랑까지 배운다.


“나는 결국 눈이 열렸다. 나는 정말 자연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클로드 모네-


 처음부터 모네는 자연 풍경을 그릴 생각이 없었다.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모네는 캐리커쳐를 그렸는데, 그런 모네를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의 화가 외젠 부댕은 모네에게 ‘외광회화‘를 추천했고 “야외에 나가 물에 비치는 빛의 움직임과 밝은 색조에 집중하라.”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후에 부댕의 조언을 들은 모네는 자연 풍경을 그리기로 결심하게 된다.


 나는 모네의 작품을 좋아한다.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 변화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장면을 여러 번에 걸쳐 작품으로 남긴 모네의 자연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사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풀과 나무, 꽃을 보고 있자면 모네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느덧 이 마을에 이사를 온 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 매스컴에서는 전세사기 사건으로 연일 대서특필을 하고 있었다. 한창 흉흉했던 시기였던지라 신경이 곤두서 있어 조그만 일에도 짜증을 부렸던 때였다. 마침 매물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집을 보기 위해 오르막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바로 초등학교였는데 그곳에 아이들의 그림종이가 걸려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활짝 핀 꽃들처럼 그림이 펄럭거렸다. 이십 대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갓 달았을 무렵, 한 번의 금전적인 사기와 사람에 대한 불신을 겪었는데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그날은 봄날씨에도 불구하고 바짝 긴장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삶에서 불행은 다양한 모습으로 행운과 동반된다. 그리고 어떤 하루는 귀속이 불분명한 일들로 가득한데 보통은 어제보다 운이 좀 좋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로 그런 불분명하고 모호한 날들 속에서 우리는 평온한 순간을 발견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닐까.


 그날, 별문제 없이 첫 전세계약을 했다. 그러고는 공원에서 고양이처럼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나무사이로 비껴 들어오는 햇살을 맞았던 어느 봄이었다.





(그림, 모네 ‘봄날 springtime’ 혹은 ‘책을 읽는 여인 Th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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