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초겨울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반찬을 챙겨 할머니와 삼촌집에 갔는데 그날은 이상할 만큼 삼촌의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철이 없었던 나는 할머니한테 얼른 집에 가자고 재촉했고 문밖을 나설 때 삼촌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음을 그제야 직감했다. 그러고는 며칠 후, 삼촌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도 길었다.
내가 처음 삼촌의 죽음을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삼촌의 사십구재가 끝나고 다음 해 봄에 삼촌을 모셔다 놓은 절에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연신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소맷자락을 보면서 처음으로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을 인식했다. 한동안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라고 말씀하고 다니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날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고 애써 삼켰던 고통을 게워 내듯이 뱉어 낸다. 그러고는 죽음, 공포, 상실 그런 것들이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서 뭉크의 작품들을 보았는데 그의 작품을 보면서 불온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작품과 말처럼 세상은 온당치 못한 일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을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으켜 세우고 다시 폭풍 속의 길로 이어지는 모순을 산다.
“내 그림에는 약간의 햇빛과 흙먼지, 그리고 비가 필요하다. 때로는 그것이 컬러를 더욱 조화롭게 한다. 새롭게 그린 그림에는 무언가 단단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 그림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거나 오일을 덧칠하려고 할 때 너무도 초조해진다. 약간의 흙먼지와 몇 개의 구멍은 그림의 완성도를 더할 뿐이다. “ -에드바르 뭉크-
사진, ‘에드바르 뭉크: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