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세상살이가 한 조각 퍼즐을 못 짜 맞춘 미완성된 그림 같다. 일찍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함께 살았었다. 시골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아빠는 무슨 이유인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시골로 이사하지 않고 서울 살이를 계속하셨다.
가끔씩 아빠가 시골집에 오면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줬던 기억이 난다. 그해 여름 방학에 아빠는 내 티셔츠에 있던 ‘뮬란’ 캐릭터를 그려주셨는데, 그림이 꽤나 맘에 들었는지 한동안 친구들에게 그림을 자랑했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뮬란’ 영화를 보고 뮬란 캐릭터에 한창 빠져있을 터였다.
사실 아빠와의 추억이 많지는 않다. 아빠는 무척 무뚝뚝했고 화도 잘 내셨는데 그런 성격적인 부분이 나는 매우 싫었다. 더군다나 나의 유년 시절에서 아빠와의 추억은 그것이 유일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를수록 부녀사이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혹은 고모가 오셨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게 참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한 번은 일부러 운동회 날짜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심으로 인하여 발생할 창피함보다는 차라리 혼자인 게 편했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말끝마다 ‘나 좀 내버려줘’를 말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스무 살 무렵에는 친구, 연애, 먹고살 걱정 같은 무용한 것들을 쫓아다니기 바빴고, 서른이 될 때에는 무가치한 감정과 시간에 낭비하고 싶지 않아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
하지만 시간은 유속이 빠른 강물처럼 멈출 줄 모른다. 내 삶에 있어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이 그곳에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추억은 반딧불같이 파르스름한 빛을 내 적막한 삶을 밝힌다. 그리고는 소중한 나의 당신들은 발열 없이 빛만을 발산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영화 <뮬란(Mulan, 1998)〉
그림, 이중섭, ‘해와 아이들’ 1952~5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