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비평원리는 우리의 읽기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원리나 규칙은 제대로 적용됨으로써 시의 특성을 증명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감정이다. 감정은 어떤 시적 도구로도 치환될 수 없는 세계이고 따라서 어떤 시의 이론이나 설명도 감정에 대해서는 별로 신빙성이 없다.”*
“반토막의 어둠과/ 그렇다고 반토막이 아닌 빛과/ 함께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시 구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시를 배우다 보면 나의 삶을 다시 시작(詩作) 하는 기분이다. 짧은 문장 안에 여러 감정이 응축되어 뚝뚝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삶은 좀처럼 잘 풀리지 않고 사람은 만날수록 어렵다. 그럴 때마다 어둑한 방에 혼자 시를 꺼내 놓고 읊었다. 똑같은 시를 반복해서 읽어도 시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럴 것, 맞을 것, 할 수 있을 것. 그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예전에는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나의 목소리는 내면에서 내고 있다는 것을.
행복과 타협할 수 없을 때 줄곧 길을 잃고 한참 동안 사랑을 찾았다. 하지만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빛들뿐, 언젠가부터 나는 그것을 집착이라 불렀다.
자동 완성되는 검색 기능처럼 “ㅎ보ㄱ”이라고 타자를 치면 오타를 감지하여 삶이 행복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AI 보다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텐데…
*이승훈, <시론>
*유계영, <샘>, ‘온갖 것들의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