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진

이따금 흰색 빛

by 이효진

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는
안경이 걸려 있고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처럼
그의 눈은 깊이 파지어서
그래도 그것은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오
나의 기아처럼 그는 서서 나를 보고
나는 모—든 사람을 또한
나의 처를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오

영탄(永嘆)이 아닌 그의 키와
저주가 아닌 나의 얼굴에서
오—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
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오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
나의 무리하는 생에서
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

그의 사진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
또 하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비참이오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
시계의 열두 시같이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버릇이 있소




__김수영 시인, 아버지의 사진


간밤 꿈에 할머니가 나오셨다

내가 걱정돼서 나오신 게 분명할 터……

살아생전에도 늘 염려하시더니 저승에서도 맨날 내 걱정만 하시나 보다


어렸을 적 함께 살았던 시골집, 그 시절 안에 갇혀있는 꼬맹이와 조금 젊은 할머니의 얼굴, 늘 꿈속에는 같은 시간이 반복돼서 나온다 : 아무래도 할머니와 나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나 보다


이번에는 꿈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다 맛있게 많이 먹었고 할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오랜만에 행복하고 따뜻했던 꿈이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꿈에 나온 할머니가 그립고 반가웠다


그러고선 새벽에 잠을 깼다 : 할머니가 오셨었구나 나도 할머니도 서로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유일한 손님, 우리 할머니.

세상에서, 하늘에서 가장 환하고 아름다운 나의 빛.

앞으로도 나는 당신이란 존재 덕분에 행복할 거야 아주 많이 많이. 그러니 이젠 내 걱정은 덜고 할머니의 행복만 생각해. 우리는 우리의 행복만 빌자.




시의 뉴 프런티어란
시가 필요 없는 곳이다.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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