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서막에서 우리는 꿈이라도
매년 이맘때쯤이면 회사는 인사이동과 함께 인수인계로 정신이 없다. 올해도 아니나 다를까 저번주부터 회사에서는 새해부터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산다는 게 전쟁같이 느껴진다.
주말까지 주 6일을 일하고 차로 30분 거리를 1시간으로 출퇴근하면 지하철에서 그리고 버스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는 상황이 전형적인 I성향을 가진 난 사실 참 힘들다. 그래서 사람을 피하려고 오히려 더 일찍 출근하거나 일부러 늦게 퇴근할 때도 있다. (혹자는 ”너 참 피곤하게 산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매일 아침 총을 장착하고 전쟁터로 떠나는 사병처럼 매 순간 우리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 나는 가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고민한다. 돈과 명예, 권력, 가족, 꿈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현재에 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 언제부턴가 내가 바라는 미래에는 꿈이란 단어보다 현실을 잘 말한다.
꿈, 꿈이라는 게 무엇이었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초등학교 때 나의 장래희망은 화가였고 중학교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을 가거나 빨리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버는 것.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 좀 더 여유가 생기겠지”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사회는 고등학생 때 보았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근사하거나 명품보다 화려하지 않고 인간은 훨씬 더 독해서 삶이 닭가슴살을 씹는 것보다 하루하루 사는 게 퍽퍽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회초년생 때 처음 이력서를 작성하고 여러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보내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그 순간순간들이 까맣게 잊힐 무렵 때 마침 일에 대한 무력감을 느꼈고 오랜 사랑에 대한 배신감에 워홀을 맘먹고 ‘나라를 떠나야겠다’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그렇게 나의 첫 결심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그때 이뤄지지 않고 실패로 인해 절망으로 다가왔던 순간이 이제는 내가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중요한 삶의 챕터가 되었다. 가장 최악이었던 날에 ‘나는 할 수 있다’ 이 몇 줄로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배울 게 많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언제까지라도 내 글로 인해 아주 단 한 사람이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조금씩 허물을 벗고 세상에 용기를 낼 심상이다.
안개에 가리어졌던 모습을 하나씩 들추면서도 생동감 있는 목소리로 당신에게 작은 울림이 되는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어딘가에 있을 데칼코마니 같은 당신에게 마음을 다해 적는다.
그래서 나는 막 3장을 마쳤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