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맞은 게 좋다.
애절한 이별 노래, 초승달이 뜬 가을밤, 바다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승맞다는 말을 안 좋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외로움과 슬픔을 온전히 받아내는 사람. 오히려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나이를 점점 먹을수록 사람들은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두려워하고 지나간 일들도 쉽게 잊으려고 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무정했다. 어쩌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동안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산문집을 읽고 나서 이미 고아가 돼버린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책 뒷면에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그 역시 지독히 외롭고 쓸쓸한 고아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청승맞은 사람들이 많다. 좋아하는 시인부터 친구들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사람들을 대하고 기본적으로 정이 많다. 최근에 우연한 일로 친한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2차로 술까지 먹게 되었는데 그때 각자의 가정환경과 결핍, 이별, 가족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처음으로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한동안 커다란 짐을 내려놓듯이 잠시 슬픔을 꺼내 도서관에 앉아있는 여학생들 같이 추억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다시 보내주었다. 더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던데 그만큼 겪었던 일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래된 문고리처럼 사람 또한 마음에 고장 난 버튼이 생기는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청승맞은 울음을 가지고 술김에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 울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같이 울었고 그래서 덜 창피했던 긴 시간을 보냈다. 잠시 뒤면 손톱달이 뜨는 새벽의 문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