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pisode1

지금 강릉

by 이효진

뚜벅뚜벅 구두, 걸음걸이, 겨울 바다에서 부는 밤바람은 어째 좀 수상하다.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강릉의 바닷물은 짠맛이 덜했고 안목은 여전히 바다를 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래서 바다는 괜찮다고.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소금기에 벗겨진 식당 간판과 누군가의 기다림 같은 빨간색 등대는 꼭 때늦게 도착한 연인의 모습 같았다.


2월의 끝자락에서 겨울 바다는 얼마나 추울까.

내심 공포에 단단히 벼르고 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닷가에 뜬 한낮의 해는 온갖 감정들이 부서질 정도로 따듯하고 좋았다. 그동안의 힘든 시간들이 푹푹 모래사장 아래로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대로 나는 바다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마치 왕자를 구하고 목소리를 잃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처럼 잠시나마 모래벌판을 흰 종이 삼아 몇 자의 글을 적었다. ‘다 괜찮아.’ 이상하게 바다를 보고 있으면 없던 용기가 생긴다. 그 흔한 두려움과 불안, 슬픔에도 온전할 수 있을 것 같이 바다는 모든 걸 떠안는다. 바다는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인 것처럼 아늑하고 또 밤마다 서럽게 운다.


매번 이렇게 사는 것 같다 바다는. 조용히 깨지고 안으로 혼자 삭힌다. 나는 그런 바다가 좋아서 다시 바다를 찾으면 낯선 이들로 가득한 곳에 앉아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아무런 말도 없이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바다의 파동이 어느 정도로 날 흔들 수가 있는지 가늠하면서 앞으로도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멀리 잔잔했던 물결이 폭풍우에 거세지고 치고 치는 거대한 파도가 지면에 닿을 때, 그때 내 안을 나타내는 모습은 파도에 있는 것 같다.

노을 진 바다 풍경과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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