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그림

by 이효진


비가 온다.

토도독 우산에 떨어지는 빗물을 본다.

같은 것들이 다르게 흩어지는 모양이라니 퍽 우습지도 않다.


계절은 점차 여름인듯한데 어째, 주변에 있는 자연이 가을처럼 식음을 전폐하는 것 같다. 말라가고 비틀어가고 그러다 살겠노라 외치는 작은 몸뚱이를 본다. 필시 그것은 떨어진 꽃잎 혹은 잎새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 예전 다이어리를 읽었다. 10년이 다 된 일기였는데 싸이월드에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을 다시 들추는 기분이란 꽤나 복잡 미묘한데, 그래도 분명했던 것은 생각보다 인간은 한결같다.


예를 들면 머리 색깔이나 늘어난 잔주름, 젖살이 빠진 것 빼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말이다. 나의 한결같은 글솜씨가 우습게도 좋았지만 또 괜히 언짢았다.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과 고집이 느껴졌기에 나는 내가 징그러웠다.


바로 그 ‘도깨비식 화법’을 숨긴 채 명랑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것이 번쩍 떠올랐다. 소설 ‘인간 실격’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 하는 심리.” 그것이 자신의 음산한 마음을 숨기고 정체성을 감추는 것.


어디까지나 사건 일부는 우연히고 우발적이었다. 그렇게 치부하면 될 일이었지만 기억의 힘은 꽤 쎄다. 왜냐하면 어떤 기억은 변화를 모색하지만 어떤 기억은 오히려 정신이 쇠퇴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가끔씩 인간이 퍽 우습고 때때로 이상한 측은지심이 생긴다.


비, 여전히 밖에는 비가 온다. 나는 공연히 너스레를 떨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이만 자야겠다.


1984, 장 미쉘 바스키아, 자화상, 2년 전 바스키아전.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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