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처연해졌다. 딱히 이유도 없이.
3일 내내 비가 내렸고 어떤 새벽은 위험하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길어진 장마만큼 여름이 더디게 가는 기분이고 그만큼 세월을 천천히 맞는 것 같아 지나간 날들이 필름 카메라 인화하듯 나타난다.
진심, 후회, 거짓 이 세 가지 때문에 어딜 가든 불편함이 앞섰다. 언젠가 나를 알던 분이 내 모습이 흑백 사진 같다고 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컬러가 아닌 정체된 모습으로 색을 잃은 흑백 같다고.
멀뚱히 멈춘 채로 작은 손짓조차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피했던 순간이 있었다. 스스로의 결박에서 풀려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 복잡했던 여러 감정을 추스르지 않고 적었던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자격이 있을까 싶다가도 뒤돌아 보면 그것만이 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현실적으로’ 살기 위해 매일 같이 일을 하고 꿈과 사랑이 먼 미래처럼 느껴질 때쯤에 그래도 스미듯이 가까이서 마주하고 싶은 것. 함께 했던 동료들이 차츰 사라져도 나는 여기에 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어스름한 공기마저 잠든 시각 스탠드 조명이 있는 곳에 나 아닌 것은 다 무의미한 모습으로 처연하게 된다.
밖은 여전히 새벽이고 비가 온다. 다시 일어나면 지난 여행에서 찍은 필름을 들고 사진관에 가야겠다. 어떤 시간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겠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