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내일이 없

by 이효진


언젠가 예순아홉 번째 여름을 맞이했을 때

그땐 지금처럼 날이 무덥지 않았으면.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손녀와 함께 놀이터를 가는 길이었으면.


긴 장마가 지나갔다. 7월 내내 비가 자주 와서 하늘을 보지 못했는데 며칠 전부터 구름이 기분 좋게 떠있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진짜 여름이구나 “싶었는데 어느새 여름을 보내는 가을 초입에 서 있는 기분이다.


같이 일하는 회사 선배도 그런 말을 했다.

“이번 여름은 유독 짧게 느껴지지 않아?”

나 역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시간은 입추에 가깝고 지금 걷는 속도가 마음과 다르게 더디게만 가는 듯하다.


언젠가 좋은 사람, 좋은 동생, 좋은 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핑계 같게도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엔 어떻게 해야 사람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까에 대한 궁리밖에 없었다.(참고로 그땐 T성향에 가까웠다)


관계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왔다 갔다 했던 시기를 걸쳐야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온탕과 냉탕을 넘나들며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하기를 반복한다. 그것이 결국 내 속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을 빼내고 수용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언젠가 어긋난 만남과 기약 없는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오는 대사처럼 서로가 강하게 이끌리면 멀어지기도 쉽고 그만큼 관계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힘든 용기가 필요할 때 우리는 겁쟁이가 되거나 무모한 선택을 하거나.


그래도 기댈 수 있는 건 이 순간에도 지구는 공전을 하고 있고 가끔 시간의 장난에 웃을 수 있다는 것. 언제나 그 흐름 속에서 어제가 되어버린 과거와 다가 올 미래 사이에 현재가 존재한다는 것.


기적은 오늘을 기록한 내일에 있고 역사는 언제나 삶의 우위에 있다. 먼 훗날 마흔을 넘기고 예순이 되었을 때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바로 ‘사랑’이라 말할 수 있기를. 언젠가 기필코 만나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틀뒤면 8월이다. 이 더위가 지나면 바람은 곧 9월이겠다.


기적은 어떤 형태로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