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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호 Oct 27. 2023

영화 ‘전생(Past Lives)’ 관람평

★★★★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크게 호평을 받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우리 애들이 극장에서 보고 감동해서 울었다고 해서, 진작에 보려 했지만, 보려던 찰나에 극장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여태껏 못 보다가 이제야 봤습니다.


1997년 우리나라에 ’넘버 3‘라는 영화가 흥행을 했습니다.  특히 송강호는 이 영화에서 조연이었지만 일약 스타가 됩니다.


넘버 3로 히트감독이 된 ’송능한‘ 감독은 2년 만에 내놓은 차기작 ’세기말‘ 역시 기대를 모았지만, 철저히 망합니다.


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좀 기괴한 영화였습니다.  옴니버스식의 전개가 딱히 재밌거나 특별하진 않았는데, 문제는 영화에서 영화평론가들을 대놓고 깝니다.


영화가 말하는 주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감독이 뭔가 평론가라던가 다른 영화 관계자들에게 대단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폭망 했고, 이후 송능한 감독은 영화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가 버린 것입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 송능한 감독의 딸인 ‘셀린 송’은 미국에서 영화감독이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 ‘Past Lives’ 만들게 됩니다.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라 느껴질 정도로 감독의 이민 스토리를 똑 닮았습니다.


여주의 아빠는 ‘넘버 11’이란 영화를 히트 친 영화감독인데, 어느 날 갑자기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갑니다.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이민을 가게 된 12살 딸은, 한국에 친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민으로 인해 둘은 헤어지게 되고, 12년이 훌쩍 흘러버립니다.


여주는 캐나다에서 자란 후 작가가 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공부를 하러 옵니다.  (감독도 컬럼비아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페북 검색을 하다가 12년 전의 그 초딩 남자친구와 페북으로 연락이 됩니다.


둘은 급격히 친해지고 옛 추억을 나누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영상통화로만 대화를 나누는데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곤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연락을 끊습니다.


다시 12년이 또 지나고, 그 사이 여주는 결혼을 하고 뉴욕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전 그 남자친구가 뉴욕으로 만나러 옵니다.  이미 30대가 된 두 주인공에, 여주는 이미 유부녀인데, 무슨 생각으로 이제 와서 만나러 오겠다는 걸까요?


초딩때의 우정을 첫사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둘은 딱히 사귄 적도 없는데요~


영화 내용은 사실 특별한 게 없습니다.


뭐랄까 흔한 어린 시절 첫사랑 이야기와 성인이 되었을 때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정말 너무너무 잘 만들었습니다.


우선 주연 배우들의 캐스팅과 연기가 너무 좋습니다.


연기를 딱히 잘한다는 게 아니라, 어색한 연기를 하는 것이 이게 진짜 배우들이 연기를 한 건지, 그냥 배우들이 어색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 어색한 상황에서의 연기가 딱입니다.


영화 내내 주연 3명 외엔 딱히 다른 조연들이 없음에도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중간에 ‘형이 거기 왜 나와?’ 장면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연출과 편집을 정말 잘했습니다.


영화가 정적으로 30초간 멈춘다면, 마치 감독이 이 장면은 29초는 너무 짧고, 31초는 너무 길어.  관객과 호흡을 위해서는 딱 30초라야 해~라는 식으로 아주 세밀하게 계산되어 편집한 느낌입니다.


그 결과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은 주인공의 그 복잡한 마음을 정말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12살 때 친구들과 헤어지고 갑작스레 이민을 가게 된 감독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자리에서 뜰 수 없게 만듭니다.


제 별점은 4개 만점입니다.  (감독의 아빠는 영화에 별점 매기는 거 아주 극혐 했습니다만..)


첫사랑과 이민에 대해 이렇게 섬세하게 만든 영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전 주인공처럼 캐나다에서 살다가 미국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더 공감되는 게 많았습니다.


23년 전 송능한 감독이 캐나다로 이민을 간 것은 이 영화로 인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딸이 아빠보다 영화는 더 잘 만듭니다~  셀린 송 감독의 다음 작품이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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