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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호 Oct 27. 2023

'방망이 깎던 노인'에 대한 고찰

'방망이 깎던 노인'은 옛날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수필로, 교과서에 나온 작품치고 상당히 인기가 높아서, 그동안 수많은 패러디가 나왔었습니다.


특히, 20년 전쯤 나왔던 'CD 굽던 노인'은 꽤 유명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수필이 생각나서, 원작 '방망이 깎던 노인'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원작은 1974년에 '윤오영'이 쓴 수필인데, 이때 윤오영의 나이는 (만) 67세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보면, 내용은 4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즉, 방망이 깎던 노인은 1934년에 동대문 근처에서 방망이를 깎던 사람이었고, 당시 글쓴이는 27세였던 것입니다.


글의 전체적인 주제는, 옛날 사람들의 장인 정신을 칭찬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장인 정신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라떼장르'입니다.


'요즘에 누가 숙지황을 구증구포 하겠는가?'


'옛날엔 신용이 중요했는데, 요즘엔 신용이란 말조차 없다.'  (물론, 1974년은 신용카드가 나오기 전입니다.)


라는 식으로, 요즘 사람들을 까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깁니다.


그런데, 방망이 깎던 노인은 글쓴이 세대가 아니라, 글쓴이보다 훨씬 나이 많은 윗 세대입니다.

방망이 깎던 노인 같은 장인들이 1974년에는 사라졌다면, 그것은 1974년 당시의 젊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1974년에 60대인 글쓴이 세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글에서 '우리 세대는 왜 장인도 없고, 늙어서도 이 모양 이 꼴인가?'라는 반성은 없습니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라는 식으로, 그냥 옛날 향수에 젖으며 끝을 맺습니다.


뭔가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입니다.


하여튼 이 작품은 1974년 작품이고, 글쓴이는 지금의 노인들보다도 훨씬 윗 세대입니다.


그리고, 1974년에 이미 장인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지만,


"라떼는 장인이 많았는데, 요즘엔 장인 정신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요즘에도 거의 단골 라떼 메뉴입니다.


어쩌면, 장인은 젊은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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