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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호 Oct 28. 2023

시애틀-시카고 암트랙 기차여행 후기

2022년에 시애틀에서 시카고까지 아들과 함께 암트랙 '엠파이어 빌더 (Empire Builder)'를 타고 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어지간하면 비행기나 자동차로 이동을 하기에, 기차는 지하철이나 출퇴근 열차를 제외하고는 이용객이 별로 없습니다.


몇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대도시 간은 그나마 이용객들이 좀 있지만, 10시간 이상의 장거리를 기차로 이동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비효율적입니다.


일단 미국은 고속전철이 없고, 철로도 오래되어서 기차가 느리며, 딱히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탈선 사고도 종종 납니다.)


이러니 미국 기차 수준은 우리나라 80년대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미국 장거리 기차여행이 어떨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암트랙 여행의 장단점을 적어보겠습니다.




단점 1) 연착은 기본!


4시 55분 출발 예정인 기차가 6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암트랙은 절대 시간을 지키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탄 기차는 시애틀에서 일요일 오후 5시경에 출발해서 46시간 후 시카고에 화요일 오후 5시경에 도착하는 일정인데 - 시카고는 시애틀보다 2시간이 빠릅니다. - 출발이 2시간 지연되었고, 또 중간에 스포켄 역에서 2시간 이상 정차해서 4시간이 넘게 늦어졌습니다.  (엠파이어 빌더 기차는 시애틀과 포틀랜드에서 각각 출발하여 스포켄에서 합칩니다.)


이후 기관사가 좀 과속을 하면서 많이 만회해서, 최종 도착시간은 예정보다 1시간 30분 늦은 6시 3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암트랙 여행 후기들을 보면 몇 시간 연착은 기본이라, 사람들도 으레 그려려니 합니다.


저는 다행히 출발 몇 시간 전에 2시간 연착한다는 메시지가 와서, 일부러 늦게 시애틀 역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기차는 와 있지도 않았고 기다리는 사람들만 있었는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는지 암트랙에서 승객들에게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공짜로 나눠줘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기다렸습니다.


(참고로 시애틀 역은 대도시 기차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차역에 매점 하나 없습니다.)




단점 2) 아주 좁은 침대칸


침대칸은 마주 보고 있는 의자 2개를 펼치면 침대가 되는 형식이다.


사실 기차 침대칸은 태어나서 처음 타봤습니다.


어렸을 때는 서울-부산 간 기차 중에도 침대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타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침대칸은 기대보다 정말 너무나도 작았습니다.


암트랙의 침대칸은 작은 방과 큰 방으로 나뉩니다.


한 방에는 2명이 잘 수 있는데, 작은 방의 경우 의자 2개가 마주 보게 되어있고, 그게 전부입니다.


그냥 의자 2개를 마주 붙이고 프라이버시를 위해 문이 있는 게 다입니다.


저도 작은 방으로 예약했는데 방이 너무나 작아서, 처음엔 여기서 과연 두 명이 잘 수는 있는 것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잘 때는 의자 2개를 펼치면 한 명이 누우면 딱 맞는 침대 1개가 되고, 또 벽에 붙어있는 침대를 내리면, 그 위로 같은 크기의 침대 하나가 더 생깁니다.


작은 방의 실제 크기는 22.75 평방피트로 0.64평 정도입니다.


작은 방은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을 써야 하는데 반해, 큰 방은 방 안에 전용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습니다.


화장실을 포함해 큰 방의 크기는 45.5 평방피트로 작은 방의 2배 크기입니다.




단점 3) 안 좋은 가성비


기차로 이동하면 실제로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듭니다.


제가 예약한 작은방의 가격은 시애틀에서 시카고까지 편도 여행이 2명 여행 기준으로 1,300불 정도였고, 큰 방은 거기에 2배 정도 비쌌습니다.


보통 시애틀에서 시카고까지 편도 비행기 이코노미가 300불 안팎이니, 침대칸으로 하면 최소 비행기 가격의 두 배가 넘게 듭니다.   (가격은 시기에 따라 계속 달라집니다.)


물론 침대칸이 아닌 그냥 일반 좌석을 사면, 비행기보다는 조금 싸게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자에 누워서 자야 하고, 침대칸은 식사가 포함인 반면, 일반 좌석은 식사는 별도 구매입니다.


다만 암트랙 기차의 일반 좌석이 비행기의 이코노미보다는 넓은 편이라, 일반 좌석에서 자면서 가는 사람들도 있긴 있습니다.


단거리의 경우엔 확실히 기차가 비행기보다 장점이 많아서, 시애틀 기차역도 대부분 이용객들은 시애틀-포틀랜드 구간을 이용하고, 제가 갔을 때도 포틀랜드에 가는 승객들로 더 붐볐습니다.


하지만, 대개 단거리는 버스가 훨씬 가성비가 좋기에, 단거리 여행에서도 암트랙이 딱히 인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단점 4) 매우 흔들리는 승차감, 계속해서 울려대는 시끄러운 경적!


미국 기차는 철로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유럽이나 동아시아 기차들보다 승차감이 좀 별로입니다.


그렇다 보니, 좌우로 많이 흔들립니다.


게다가 기차가 엄청 시끄러운데, 뭐 기차 가는 소리야 시끄러운 건 당연하지만, 기차가 건널목만 가까이 오면 빵~빵~하고 경적을 울려댑니다.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깡촌 시골이라도 도로는 발달했기에, 정말 거짓말 안 하고 1분마다 빵~빵~ 하고 울려댑니다.


그런데, 밤에도 밤새도록 1분마다 빵~빵~하고 울려대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노캔 헤드폰을 끼고 잠을 자면 그나마 낫습니다만, 밤새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더구나 기차가 주로 밤에 속도를 더 내기에, 밤에는 더 많이 흔들립니다.




단점 5) 지저분한 화장실


기차의 화장실은 비행기처럼 변기가 건식이라 오물이 남기 쉽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오래가지 않으니 굳이 비행기에서 큰 일을 보는 사람이 적지만, 기차는 며칠을 가니 화장실에서 큰 일을 꼭 벌여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화장실을 쓰기 싫어질 정도로 대부분 상태가 안 좋습니다.


물론, 화장실 관리가 안되거나 화장실 자체가 아주 더럽거나 하지는 않지만, 기차 변기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점만 계속 지적하는 거 같은데, 그래서 장점도 적어보겠습니다.


장점 1) 기차여행만의 풍경 감상


암트랙은 바다나 강 가까이 달리기에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기차 여행의 매력은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겁니다.


기차에서는 대개 도로보다 더 좋은 풍경을 감상할 기회가 많습니다.


북미는 기찻길이 1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져서, 계곡이나 강을 따라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또 기찻길은 대개 도로보다 더 계곡이나 강에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물론 너무 좋은 풍경이 나와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그새 휙~ 지나가 버립니다. 


또, 기차가 한쪽이 경치가 좋으면 반대쪽은 대개 그냥 벽처럼 아무 볼 것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쪽이 정해져 있습니다.


암트랙은 관광칸이 있어서, 자유롭게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볼 수 있는 칸이 있지만, 경치가 좋은 구간에서는 이 칸으로 사람들이 몰리기에 자리를 미리 잘 잡아야 합니다.

관광칸은 기차 밖을 보기 좋도록 위쪽으로도 유리창이 있다.


제가 탄 '엠파이어 빌더'는 '글레이시어 국립공원'을 지나가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찻길이 국립공원을 관통하지 않고, 남쪽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서, 생각보다는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가장 볼 만한 구간이었습니다.




장점 2) 생각보다 맛있는 열차음식

암트랙의 식사는 특별한 요리는 아니지만, 나름 맛이 좋다.


암트랙의 침대칸은 식사가 포함입니다.


식당칸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있는데, 4인 1테이블이고, 일행이 그 이하이면 다른 사람들과 합석을 시킵니다.


그래서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물론, 대부분 은퇴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기차여행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음식 메뉴가 딱히 특별한 건 없고, 또 고급 레스토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꽤 먹을만하고 맛있습니다.


기차 음식은 아무래도 100년 넘게 서비스를 해온 노하우가 있어서 그런지, 어느 나라나 맛있는 거 같습니다.


암트랙도 예외는 아니어서, 음식은 정말 만족했습니다.




장점 3) 짐을 많이 갖고 탈 수 있음


암트랙 기차는 개인당 50파운드 큰 가방 2개, 25파운드 작은 가방 2개까지 공짜로 갖고 탈 수 있기에, 비행기보다 좀 넉넉하게 짐을 가지고 탈 수 있습니다.


다만 침대칸의 작은방은 가방을 놓을 공간이 없기에, 큰 가방은 밖에 짐 놓는 곳에 둬야 합니다.


또, 샤워실에는 비누와 수건만 있기에, 샴푸, 트리트먼트, 헤어드라이어 등은 갖고 타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생수는 자유롭게 갖고 가도록 쌓아 두기에, 물은 따로 갖고 탈 필요는 없습니다.




장점을 더 적고 싶은데, 사실 장점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이 돈 주고 왜 2일간 고생하며 기차를 탔나~ 하는 생각에 또 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일도 힘든데, 설국열차 사람들은 어떻게 평생 기차에서 살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창밖의 달을 바라보며 노캔 헤드폰으로 김광석 노래들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감상에 젖어서 옛날 기차 여행을 했던 추억들이 하나둘씩 기억이 났습니다.


초딩때 5시간 동안 비둘기호를 타고 신탄진 이모댁에 갔던 일


중딩때 부산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를 보러 난생처음 새마을호를 탔던 일


예과 1학년때 광주에서 열리는 전대협 출정식에 가기 위해, 전경들을 피해 안양역에서 통일호를 강제 정차시키고 무임승차 한 후 광주 들어가기 전 어떤 이상한 역에서 내려서 전남대까지 갔던 일 (선배 따라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간 건데, 전경들이 그렇게 막을 줄은 몰랐음)


본과 1학년때, 어느 날 갑자기 수업을 땡땡이치고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촌에 갔다 온 일


본과 2학년 때 (지금은 울 와이프인) 여친과 함께 새벽에 엑스포 기차를 타고 대전 엑스포에 놀러 갔던 일


정말 기차 여행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차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추억이구나~라는 생각에, 함께 여행한 아들이 이틀 동안 아빠와의 기차 여행을 나중에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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