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마음은 현재 삶에 탁함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이 너무 가고 싶은 것은 마음 속 탁함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움을, 어떤 영감과 용기를 얻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는 어떠한가? 나는 어떤 탁함이 가득한 상황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탁함이란, 인생이 정체되어 답답함을 느낀다거나 하는 일이 죄다 되질 않아서 뭔가 꼬인다는 느낌을 느낄 때 생기는 어떤 기운을 지칭한다. 10월이 되어서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다. 멀리는 남해 보리암도 갔고, 가야산 해인사도 다녀왔다. 정신없이 아이와 부모님을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했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기회가 된다면 올해의 마지막은 설악산에서 어떤 영적인 기운을 느끼고 싶다.
작년 이맘때쯤 내 일상은 모두 무너졌다. 응급실에 간 남편은 갑자기 병기가 좋지 않은 폐암이라며 갑자기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흉수를 빼고 있었다. 그리고 시아버님은 선망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였고, 운영하던 사업체도 날아간 상태였다. 축(丑)년에 우리 가족의 모두 것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그때 허망하고 어디 기댈 곳 없던 나는 기도를 하러 경북과 단양에 갔었다. 자칭 소원 명당이라는 곳에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을 묵고 싶었지만, 상황상 또 그럴 수도 없었다. 당시에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 나온 이 구절이 묘하게 들어맞었다.
여행을 떠나 이틀만 지나면 사람은 -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를 박지 않은 젊은이가 특히 그렇듯이- 의무, 이해관계, 근심과 희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즉 일상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20대도 아니였고, 삶에 뿌리가 정말이지 진득하게 박혀있었지만, 내가 그 심각한 상황에서 차를 몰고 기도처로 떠났을 때 묘하게 그냥 다 잊고 있는듯한, 나를 둘러싼 그 무겁고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남편은 병실에 있고, 아이는 시어머니와 함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참으로 여행이란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2년의 마지막은 이제 다가올 새해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정신을 안정시키고자 한다. 작년과 같은 허망함은 없지만, 새해의 새로운 희망으로 내 몸을 채우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양명함으로 내 온몸과 정신을 가득 가득 채우고 싶은 열망이 있다. 아직 이 불행이 끝난것이 아니기에 나는 또 내년을 달려야 한다. 그러하기에 강해져야 한다. 여행을 가서 그동안 나에게 쌓인 모든 피로와 감정의 찌꺼기를 다 풀고, 새로운 양기와 어떤 힘찬 영적인 기운으로 내 몸을 내 영혼을 가득 채우고 싶다. 그래서 설악산으로 정했다. 설악산은 한반도 거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답다고 알려진 산이기 때문이다. 그 산이 주는 아름다움을 내 마음에 내 영혼에 가득 가득 채우고 싶다. 하지만, 이미 지쳐버린 내가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몇가지 선행 사항들이 있고 이를 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