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즐기는 삶
알고는 있지만, 자주 까먹기 쉬운 말이 '매 순간, 아니 과정을 즐기자'이다. 나는 브런치에 매번 우주가 선사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겠노라 하였지만 사실 그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말에는 어떤 특별함, 이벤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남편의 치병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산
한상도 님의 '사라진 암'이라는 책을 보다가 아 이거다라는 순간을 느꼈다. 그는 책에서 경기도 시흥에 사는 지인이 주말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텃밭에 주말농장하러 가는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의 치병생활도 그 지인처럼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그 작가처럼, 목표지향적 삶을 살았던 지라 머 하러 굳이 4-5시간 텃밭활동하러 그 먼 곳에 가나 했다. 하지만, 그분은 그 모든 과정을 즐겼기에 그 텃밭생활을 10년 동안 해올 수 있었다고 했다. 더구나, 그 지인은 시력이 나빠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경기도 시흥에서 강원도 영월까지 다녔다고 하는데, 그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는 시간마저 즐겼다고 한다. '아 이거다' 그래 즐겨야 한다. 나는 남편의 치병이라는 목표를 세워두고 그것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기에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웠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척척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내가 기대한 만큼 남편의 태도나 몸상태가 개선되지 않을 때 더욱 그러하였다..
나는 계속 이 가혹한 운명의 피해자였다. 나 혼자 가게 경제를 짊어져야 하고, 또 밥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등등 지난 세월이 나에겐 극복해야 할, 사라졌으면 하는 시간이었던 거다. 그래서, 힘들었다.
정답은 멀리 있지 않았는데, 나는 홀로 여전사가 되어 굉장히 심각하게 삶을 스스로 고통스럽게 살려고 했던 거 같다. 전혀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출근하는 순간도 이렇게 글을 적는 순간도 그리고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순간도 모두 즐기리라 결심했다. 그동안은 아 주중에 일하고 살림하느라 힘든데 이제 주말에 아이케어까지 내가 다하고 이게 머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주말에 아이와 데이트를 하는 거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 덕분에 세상구경도 하고 새로운 것도 보는 거였다. 우리 아이의 꼬물거리는 작은 손 잡으며 돌아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아이 기억에 좀 더 행복한 즐거운 엄마가 되어야지 다짐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지, 내가 희생해야지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어떤 무엇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또는 인고의 세월로 인식하지 않고 그 아저씨처럼 그냥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리라 재미있어하며 즐기리라 결심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진리를 이렇게 엉뚱하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감사한 거다. 모든 사건이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한 거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매일매일 재미있고 기분 좋게 살다 보면, 말은 안 듣지만 너무 사랑스러운 내 아이와 신나게 놀다 보면, 그러는 사이에 내 집도 팔릴 거고, 부채도 해결되고 또 남편도 낫겠지. ~해야지만, ~가 해결되어야지만 내가 행복해지고 기분 좋아지고 이딴 건 없다. 집을 사고 나면 나는 우리 삶이 좋아질 줄 알았다. 근데 머...
그냥 이게 사는 거인가 보다. 생로병사 이건 그 누구도 피할 갈 수 없는 삶의 이벤트들이고 내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겪어야 할 과정으로 이해했다. 단지 그 순간들을 즐겁게 보낼 것인지 인내와 고통으로 보낼 것인지는 내 결정에 달린 것이다. 운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니, 좋은 운, 하늘의 기를 받기 위해서는 즐겁게 살라고 한다. 궂은일에도 평온을 유지하며, 미소 지으며 삶을 묵묵히 하지만 즐겁게 살다 보면, 하늘이 감동하여 나에게 행운을 주신다고 말이다. 머가 되었든 버스 타고 텃밭 가꾸러 가는 그 아저씨처럼 나 역시 모든 순간을 즐기며 웃으며 보내야지.
운명은 이렇게 개선하는 것이다. 항상 평온을 유지하고 세상에서 당하는 나쁜 일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주역으로 배우는 운명학, 김승호-